건강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50대가 1년 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10초간 찍은 심전도는 숨어 있는 위험까지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심전도 속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는 기술이 현실화되면서 고령화 시대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정상 심전도에서 미래 질환 예측하는 AI
딥카디오㈜는 심전도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현재는 물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심장질환까지 예측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202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인하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들과 AI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국내 30개 이상 병원에서 실제 환자 진단에 활용되고 있으며 올해만 5∼6개의 신제품을 추가로 출시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숙련된 심장내과 전문의도 놓치기 쉬운 발작성 심방세동의 위험을 정상 리듬 속에서 찾아낸다는 점이다. 심방세동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떨리는 부정맥으로 뇌중풍(뇌졸중)의 20∼30%가 여기서 비롯된다. 문제는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검사 시점에 따라 발견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심전도가 정상인데 왜 일주일씩 검사를 더 받아야 하나요?” 건강검진센터에서 흔히 나오는 이 질문에 딥카디오의 AI가 답을 제시한다.
딥카디오는 4만6000건 이상의 임상 데이터를 학습한 AI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진단 정확도는 0.907로 이론상 최대치인 1.0에 근접한다. 국내 대부분의 AI 심전도 업체들이 응급실 특화 제품에 집중할 때 딥카디오는 심장질환의 전 스펙트럼을 커버하는 솔루션을 구축했다. 부정맥, 심부전, 관상동맥질환, 심장 기인 뇌졸중까지 단 한 번의 검사로 통합 진단이 가능하다. 현재 3종의 제품이 상용화됐고 올해 안에 5∼6종, 내년까지 15종 이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 함께 만든 회사
이처럼 현장 중심의 기술 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딥카디오의 독특한 창업 배경 덕분이다. 2018년 인하대 전기전자공학부 최원익 교수는 심장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심전도를 찍었지만 결과는 애매했다. 몇 개월에 걸쳐 수차례 병원을 찾았지만 계속 정상이라는 말만 들었다. 결국 이상했던 증상들은 발작성 심방세동 때문이었다.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검사 시점마다 우연히 정상 박동 상태였던 것이다.
공학자인 최 교수는 이 경험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는 주치의였던 인하대병원 심장내과 김대혁 교수와 함께 ‘정상으로 보이는 심전도에서도 미래 심장질환의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AI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임상 전문의와 AI 전문가의 만남으로 의료진조차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미세한 심전도 패턴을 AI로 학습시키는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여기에 인하대 컴퓨터공학과 이상철 교수와 심장내과 백용수 교수가 합류하며 2020년 딥카디오가 탄생했다.
담당 의사와 환자가 만나 창업한 사례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의사와 그걸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공학자의 시너지는 SCI급 논문 190여 편, 국내 특허 40건 이상이라는 연구 성과로 증명됐다. 이러한 기술력은 시장에서도 빠르게 인정받았다. 2022년 소프트뱅크와 데일리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2023년엔 ‘AI 스타트업 100’ 선정과 함께 대한민국 우수특허 대상을 받았다. 2024년엔 첫 제품이 식약처 승인을 받았고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됐다. 2025년 유럽심장부정맥학회에서 디지털 심장 분야 연구상을 수상하며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도 입증했다.
이윤보다 생명, 100년 기업의 조건
딥카디오는 기술로 사회 전체의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심전도검사를 국가건강검진 필수 항목으로 만들고 여기에 AI 분석을 결합해 전 국민의 심장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것이 실현되면 뇌경색, 심부전, 치매 같은 심장 기인 합병증의 발생률을 대폭 낮출 수 있다. 회사 측은 유병률을 30∼40%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러한 비전 실현을 위해 딥카디오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2년 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2028년까지 매출 200억 원 달성이 목표다. 올해는 시리즈 B 투자를 진행하며 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한다. 내년까지 미국 FDA와 유럽 CE 인증을 받아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심전도 장비 제조사 인수나 협력을 통해 판매망을 넓힐 방침이다. 이미 GE헬스케어와 채널 파트너십을 맺었고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와는 희귀질환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심전도, 혈압-당뇨처럼 일상 관리 대상 돼야”
최원익 딥카디오 대표 인터뷰
최원익 딥카디오 대표는 인터뷰 동안 ‘사회적 기업’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단순히 매출과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류의 건강 증진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현재 심장 관리 시스템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심전도는 혈압, 혈당만큼 중요한데 정작 일상적 관리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병원을 찾죠.” 그는 심전도가 국가건강검진 필수 항목이 되고 AI 진단이 결합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뇌경색, 심부전, 치매 같은 심각한 합병증의 상당수가 심장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조기에 발견하면 막을 수 있어요. 우리 기술이 실제로 국가 의료비를 수조 원 절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현실의 벽도 있다. 그는 혁신의료기술 제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한 번의 심전도검사로 여러 질환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데 두 개 기술을 동시 적용하지 못하게 막아놨어요. AI 의료 기술을 쓸 때마다 환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것도 현장에서는 큰 부담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담겨 있다. “딥카디오는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심혈관질환 유병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만들 겁니다. 그게 100년 기업이 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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