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전쟁에 ‘안전 투자’ 쏠림 심화
5대 은행 달러예금 2년만에 최고
골드뱅킹 잔액도 9000억 처음 넘어
“트럼프 弱달러 원해 불확실성 커”
직장인 김모 씨(41)는 요즘 들어 달러 가격이 내렸다 싶을 때마다 미국 달러를 사모으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관세 전쟁’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시장이 출렁거리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클 때 달러를 모으는 것이 그나마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달러를 조금씩 모아놨다가, 달러 가격이 또 한 차례 치솟을 때 처분할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안전자산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가운데, 금(金) 관련 상품뿐만 아니라 달러에도 시중 자금이 몰리고 있다. 폭증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골드바 품귀 현상이 빚어지며 일부 시중은행에서 골드바·실버바 판매가 막혀버린 것도 대체 투자상품 달러의 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자료: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각 사 취합.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14일 기준 달러예금 잔액은 총 676억5207만 달러로 나타났다. 월말 기준으로 2023년 1월(682억3181만 달러) 이후 약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지난해 말(637억9719만 달러)보다 6.0%, 지난달 말(635억2915만 달러)보다 6.5% 늘어났다. 2023년 1월 평균 1247.2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달 1∼14일 평균 1450.9원으로 올라, 원화 환산을 고려하면 잔액은 2년여새 약 15조 원 불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자료: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각 사 취합.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음에도 달러 매도로 차익을 실현하기보다 달러의 지속 상승에 베팅해 추가 매수에 나서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고 분석한다. 달러예금 규모는 이달 13일까지 630억∼640억 달러에서 등락을 반복하다가 14일 670억 달러대로 잔액이 급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17일(현지 시간) 미국 공휴일인 프레지던트 데이를 앞두고 달러 매수세가 더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금리 인하 기조로 내리막을 탄 일반 예금 금리보다 달러예금 금리가 소폭이나마 높은 점도 달러예금 수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골드바와 실버바의 실물 조달이 어렵게 되자 달러예금과 더불어 골드뱅킹 잔액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14일 기준 골드뱅킹 잔액은 총 9019억 원이다. 골드뱅킹은 통장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3개 은행 잔액이 9000억 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5대 은행이 이달 1∼14일 판매한 골드바는 총 502억1328만 원을 나타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 흐름에 따라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향후 불확실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위적인 달러 약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16일 ‘트럼프 1기 행정부 환율 정책의 회고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진영에서도 달러화 가치가 고평가됐다는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위적 약달러 유도 정책은 예상보다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할 개연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외 불확실성의 고조로 금을 포함해 달러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계속 (가격이) 올라갈지는 미지수다”라며 “미국이 다른 나라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가정했을 시 달러가 강세가 되면 관세 효과가 상쇄되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약세를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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