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투자 재원 마련”… 자회사서 20조 자금 수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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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유보금 100조는 해외에 분산
현금화엔 시간 필요… 환손실 우려
“침체기에도 반도체 투자 지속할것”
기업 계열사간 자금이동 확대될듯

삼성전자가 17일 반도체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자회사로부터 20조 원에 이르는 금액을 수혈받는다. 삼성전자의 자회사 자금 수혈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1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회사는 이달 17일부터 2025년 8월 16일까지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 원을 운영자금 명목으로 단기 차입한다. 이자율은 연 4.60%다. 20조 원은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자기자본의 10.35%에 해당하는 액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다운사이클(침체기)에도 미래 시장을 보고 설비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일단 2025년까지 만기로 설정했지만 경영 상황에 따라 조기 상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대규모 자금을 자회사로부터 유치한 데에는 재무 전략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반도체 침체가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20조 원을 밑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수년간 연간 영업이익 50조 원 안팎을 거둬 반도체 설비 투자에 쏟아부었던 것과 달리 올해 자체적인 투자 재원이 부족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체 유보 자금 100조 원가량은 주로 미국과 중국, 유럽, 싱가포르 등 각 해외 법인에 분산돼 직접 투자나 출자 형태로 묶여 있다. 당장 올해 반도체 설비 투자에 투입하기엔 절차와 시일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환손실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지분 85%를 가진 자회사다. 외부 차입이라 보기에는 사실상 내부 자금 융통에 가깝다. 이번 차입으로 삼성전자가 납부하는 연간 9200억 원의 이자는 삼성디스플레이에는 금융수익으로 잡히게 된다. 실질적인 외부 부채이자 절차 및 시간이 걸리는 회사채 발행이나 외부 자금 조달을 택하는 대신 결국 가장 빠르고 재무적 부담이 적은 자회사 자금 수혈을 택한 배경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40조∼50조 원대의 반도체 투자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며 “계열사 차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자금 확보가 국내 자금시장에 미치는 영향, 유보자금의 해외 운용 현황 등을 고려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자금 확보 방안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서 최소 올 상반기(1∼6월)까지 경기 침체와 금융 경색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미래 투자 재원 마련이 시급한 주요 기업과 지난해 경기침체 직격타를 맞은 곳들에서 계열사 간 자금 이동은 당분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SK온은 생산라인 투자를 위해 2조8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며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2조 원을 출자했다고 밝혔다. 앞서 결정했던 미국 켄터키·테네시주와 중국 신규 공장 등 추가 생산라인 투자를 위해 최소 수조 원대 자금을 조달해야 하지만 예상보다 외부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모회사가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들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글로벌 원자재가 인상의 직격타를 맞았던 롯데건설도 10월 롯데케미칼로부터 5000억 원을 비롯해 롯데정밀화학과 롯데홈쇼핑으로부터 각각 3000억 원, 1000억 원 등 계열사 자금 총 9000억 원을 빌려 급한 불을 껐다. 주로 3개월 단위의 단기 차입으로, 올해 들어 모두 조기 상환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삼성전자#반도체 투자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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