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만 잘 수 있다면”… 연간 2조원대 시장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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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부족 국가’ 한국에 점점 커지는 ‘슬리포노믹스’

‘양질의 수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면 이어폰, 아로마오일 등 숙면을 돕는 상품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수면용품 관련 시장 규모는 2조 원대로 추정된다. 사진 출처 보스(BOSE) 홈페이지
‘양질의 수면’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면 이어폰, 아로마오일 등 숙면을 돕는 상품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수면용품 관련 시장 규모는 2조 원대로 추정된다. 사진 출처 보스(BOSE) 홈페이지
‘실제 수면시간 6시간 30분.’ ‘뒤척임 없음 3시간.’ ‘뒤척임 많음 52분.’

직장인 이문정 씨(33)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워치 ‘수면기록’부터 확인한다. 시계에는 지난밤 이 씨가 뒤척인 것은 물론이고 ‘꿀잠’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효율이 낮게 기록된 날에는 저녁 약속을 되도록 잡지 않고 일찍 귀가한다. 이 씨는 “처음에는 시계를 차고 잠을 자는 게 불편했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피곤한 경우가 많았는데 기록을 통해 지난밤 수면 흔적을 확인하고 바이오리듬을 조절할 수 있어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계부터 본다”고 말했다.

○ 만성 ‘잠 부족’ 국가

최근 수면 부족으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면서 양질의 수면, 이른바 ‘꿀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인의 하루 수면시간은 평균 7시간 41분으로 나타났다. 회원국 전체 평균(8시간 22분)보다 41분 부족했고 가장 많이 자는 미국인(8시간 45분)과 비교하면 1시간 이상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는 1일 수면시간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였다. 직장인은 수면 시간이 6시간 6분에 그쳐 ‘만성 수면 부족’을 겪고 있었다.

수면 부족은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비만 등 각종 질병으로 이어진다. 최근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경기도 수면산업 육성을 위한 실태조사 및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질환자는 2014년 75만9000명에서 2016년 88만3000명으로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 추세다. 대표적인 수면장애는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등이다. 같은 기간 관련 질환으로 인한 병원 진료비는 934억 원에서 1178억 원으로 늘었고 약국 진료비는 2014년 369억 원에서 2016년 466억 원으로 증가했다. 수면 장애를 겪는 연령층은 50, 60대가 가장 많았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전국적으로 11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경기연구원은 추산했다.


○ ‘잠을 삽니다’ 슬리포노믹스 확산

얼마 전 결혼한 김모 씨(31)는 신혼집을 마련하면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퀸 사이즈 침대 대신 싱글 사이즈 침대 2개를 구입했다. 부부가 한 침대가 아닌 각자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김 씨는 “남편과 출퇴근 시간이 달라 서로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어 침대를 각자 쓰기로 했다”면서 “전날 밤 수면의 질이 그날 컨디션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민 끝에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생활 패턴이 다른 부부들은 침대를 따로 사거나 한 침대이지만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투 웨이 리클라이너 침대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4년 3.0%에 불과했던 전년 대비 침대 매출 증가율은 2016년 10.7%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4.7%로 눈에 띄게 높아졌다.

숙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꿀잠’을 돕는 수면용품 시장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수면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슬립(Sleep)’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를 더한 ‘슬리포노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실제로 최근엔 피곤이 일상인 직장인들을 상대로 잠을 파는 공간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영화관 CGV는 2016년부터 일부 영화관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에스타’(낮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잘 수 있다. 비슷한 콘셉트의 수면 카페도 오피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CGV 관계자는 “점심시간 때 졸고 있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시범 서비스로 선보였는데 생각보다 고객들의 호응이 좋아 정식 서비스를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 ‘슬립테크’ 시장도 성장

소셜커머스 티몬에 따르면 최근 1개월(3∼4월)간 ‘토퍼’(매트리스 위에 까는 푹신함을 더하는 쿠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전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는 ‘아로마오일’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40% 늘었다. 기본 안대에 온열 기능이 더해진 ‘온열 안대’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8% 올랐다. 최근에는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동시에 수면을 돕는 다양한 사운드가 탑재된 이어폰이나 수면 중 움직임을 추적하는 스마트 베개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전자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2019년을 대표하는 신조어 중 하나로 수면을 돕는 기술을 뜻하는 ‘슬립테크(Sleeptech)’를 꼽기도 했다.

숙면 관련 시장 확대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불면증 환자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 되는 미국은 관련 시장 규모가 20조 원에 이르며 일본도 6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후발주자로 2000년 중반에 들어서서야 관련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업계는 국내 수면산업 구조가 2012년 5000억 원에서 최근 2조 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향후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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