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車 사장 아이카와, 취임 2년만에 ‘연비조작’ 불명예퇴진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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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황태자

“미쓰비시의 황태자.”

20일 연료소비효율 조작을 시인하고 퇴진 위기에 몰린 아이카와 데쓰로(相川哲郞·62·사진) 미쓰비시자동차 사장이 2014년 2월 취임했을 때 일본 언론은 그를 ‘황태자’라고 불렀다. ‘미쓰비시의 제왕(帝王)’이라 불렸던 아이카와 겐타로(相川賢太郎) 전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아이카와 전 회장은 전후 재벌 해체로 오너가 없는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사장과 회장직을 합쳐 10년(1989∼99년) 동안 회사를 경영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아이카와이즘’이라는 단어도 남겼다.

아이카와 사장은 아버지 영향을 받아 도쿄대에서 선박기계를 공부했지만 도쿄모터쇼에서 본 미쓰비시의 ‘미라주’ 초기 모델에 감명받아 1978년 미쓰비시자동차에 입사했다. 미쓰비시자동차가 중공업에서 분리되고 나서 8년 뒤였다.

아버지 후광을 업고 입사 때부터 주목받던 그는 2001년 수석엔지니어를 맡아 경차 ‘eK왜건’을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켰다. 심플한 디자인과 우수한 연비를 갖췄고 안전성을 강화했지만 가격은 91만 엔(약 950만 원·현재 환율 기준)밖에 안 됐다. eK왜건은 첫달 2만8000대를 주문받으며 창사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당시는 회사가 30년 가까이 브레이크 클러치 연료탱크 등 온갖 결함을 숨기며 리콜 신고를 하지 않아 위기에 몰린 직후여서 그는 일약 ‘미쓰비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후 최연소 상무에 오른 그는 2004년 회사가 다시 리콜을 은폐한 사실이 적발되고 최대 주주인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했을 때 상품개발본부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줄줄이 짐을 쌀 때도 “미쓰비시의 DNA를 가진 차를 개발하고 싶다”며 구조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회사는 계열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고 이후 계열사 모임의 리더 격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최대 주주가 됐다.

10년 동안 회사 최일선에서 함께 위기를 극복한 그가 사장에 취임할 때는 사내에서 반대가 하나도 없었다. 별명은 ‘황태자’였지만 겸손한 성격 덕이었다.

하지만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의 아이카와 사장에게 회사 체질을 확 뜯어고칠 만한 역량은 부족했다. 아이카와 사장은 “직원들에게 부담을 준 적이 없다”고 했지만 신형 eK왜건 개발진은 L당 29.2km 이상이라는 연비 목표에 집착했고 연비를 5∼10% 과장한 차를 시장에 내놓게 됐다. 2002년부터 회사 내부에서 상습적으로 이뤄지던 연비 조작은 도를 넘어 아예 달려 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서 계산해 제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조작이 사장 취임 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억울할지 모르지만 그의 자동차 인생 38년은 이제 불명예 퇴진으로 끝나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회사가 안정적이었다면 좋은 리더였을 것”이라는 한 종업원의 말을 전했다. 위기 돌파형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인 경영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는 지적이다.

일본 언론 추산에 따르면 연비를 잘못된 방법으로 측정한 차량은 27종, 200만 대 이상에 달한다. 아이카와 사장은 자신의 대표작인 eK왜건의 연비마저 조작된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닛산에 납품한 차에서 연비 조작이 발견돼 닛산과의 협력 관계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미쓰비시 계열사들 모임인 ‘금요회’에서 도와주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가 많다. 엔지니어 경영자의 쓸쓸한 퇴장만이 기다리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미쓰비시#연비조작#불명예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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