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만 채우면 돼”… 3월까지 미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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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집행 1월 성적 낙제점

정부는 그동안 경기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 조기 집행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경기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1분기(1∼3월)부터 가용한 재원을 조기에 집중 투입한다고 공개했다. 올 2월 내놓은 미니 부양책에선 중앙·지방재정 및 지방교육재정의 조기 집행 규모를 당초 계획 대비 6조 원 추가 확대한다고 밝혔다. 불과 두 달여 사이에 1분기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 규모는 ‘125조 원→138조 원→144조 원’으로 두 차례나 바뀌었다. 하지만 1월 전체 재정집행률은 8.2%로,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정부 의지가 무색했다.

○ 3월 말 재정 집행 몰아치기


재정 조기 집행을 경기 회복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정부 구상이 성공하려면 일단 시중에 돈을 최대한 많이 풀어야 한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매년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 상황에서 예년보다 돈이 덜 풀리면 경기 왜곡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월 재정집행률 부진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2월부터는 순조롭게 재정이 집행되고 있다. 당초 1분기 목표(30%)는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정 조기 집행으로 기대했던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지출이 많지 않은 1, 2월, 그중에서도 1월부터 바로 재정이 집행되는 것이 관건이다.

문제는 같은 1분기 내에서도 1월보다는 2월, 2월보다는 3월에 주로 재정이 집행된다는 점이다. 집행 시기가 늦어질수록 당초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일선 부처의 한 공무원은 “내년도 예산 심의를 감안해 기재부가 세워 놓은 재정집행률 가이드라인은 통상적으로 채우긴 한다”며 “하지만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3월 말에 몰아서 집행하다 보니 과연 재정의 조기 집행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 1월 1일부터 즉각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3조5000억 원의 예산을 지난해 말에 조기 배정했다. 국방부의 병영생활관 부속시설·일반지원시설(1161억 원),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전문인력 역량 강화(524억 원), 국토교통부의 87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2조1000억 원) 등 주로 국민체감도가 높고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일부 사업은 1월 중에 개점휴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는 방위사업청의 전자기파(EMP)방호시설·군단지휘시설 신축 등 4개 사업에 1230억 원을 배정했지만 방호시설사업 예산은 1월에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SOC 사업 역시 대규모 예산 배정에도 불구하고 집행 실적은 지지부진하다. 국토부의 1월 재정 집행 실적은 2조2876억 원으로 연간 계획(36조6295억 원) 대비 6.2%에 머물렀다. 이는 전체 집행률보다 2%포인트가량 낮은 수준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2.0%), 한국도로공사(0.5%), 한국농어촌공사(0.3%)도 낮은 수준이다.

○ 업무보고로 인해 조기 집행 차질

1월 재정 조기 집행이 부진한 이유로는 1월 중순경 시작되는 각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4일부터 26일까지 업무보고를 받았다. 정부가 아무리 재정 집행을 독려해도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나기 전까지는 사업 실행이 이뤄지지 않는다. 재정 조기 집행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연초 업무보고 시기를 전년 말로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2009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도 각 부처 업무보고를 2010년 초가 아닌 2009년 12월 14일부터 연말까지 분야별로 7차례에 걸쳐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기로 한 상황에서 재정이 빠르게 집행될 수 있도록 업무보고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2009년 0.9%에 그쳤던 경제성장률이 2010년 6.5%로 반등할 수 있었던 데는 재정이 1월부터 즉각 집행될 수 있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재정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1월 재정 집행을 각 부처의 자율에 맡겨두고 있는 점도 집행률 부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기재부의 압박이 없다 보니 일선 기관들도 “2월이나 3월에 가서 목표치만 채우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부 기관에선 최근 재정사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는 바람에 예산 집행이 전면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일선 부처 사업담당 관계자는 “결국 책임은 현장에서 지는 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재정집행#업무보고#국가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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