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졸면 죽는다” 이 악문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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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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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2005년까지 잘나가다 급전직하
워크아웃 돌입후 14분기 연속 흑자 기록

《 팬택은 외줄 위에 올라선 광대였다. 경쟁사들이 빠르게 달리는 동안 이 회사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줄 위를 걸었다. 국내 경쟁자들이 하필 세계 휴대전화 시장 2, 3위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여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휴대전화 시장이 급성장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잘 버티는 듯했지만 곧 ‘브랜드 파워’가 절실해졌다. 》
그래서 2005년 SK텔레텍(스카이)을 인수하고 시장을 넓히기 위해 해외영업도 강화했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됐다. 2007년 팬택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9일 팬택이 창사 20주년을 맞는다. 비록 워크아웃 기업이지만 팬택은 2010년 4분기(10∼12월)까지 14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이처럼 파산위기의 중소기업이 부활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1990년대 이후 창업한 기업 중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기업도 손에 꼽힌다. 게다가 팬택은 지난해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에 올랐다. 비결이 뭘까.

박병엽 부회장에게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 차례 물었다. 팬택은 ‘아이폰’ 같은 인기 제품도 못 만들었고 삼성처럼 브랜드를 잘 관리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그는 “큰 회사들 사이에서 틈새 찾아 어떻게든 거기서 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우리 정신”이라며 “절절한 한(恨)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팬택 임직원들은 이를 “졸면 죽는다”라고 표현한다. 제조업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만이 아니라 부품을 제때 값싸게 사들이는 노하우가 제품 가격을 좌우한다. 따라서 평소 공급망을 잘 관리해야 하고 재고관리를 잘해 추가비용도 아껴야 한다. 시장 변화를 조금이라도 놓치면 큰 손해를 본다. 덩치가 큰 선두 기업은 한두 해 적자를 봐도 만회할 수 있지만 작은 회사는 그렇지 않다.

팬택은 14분기 연속 흑자를 내면서도 영업이익률은 3∼8%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구조조정 직후 15% 이상 이익을 낼 때도 있었지만 아이폰이 국내 시장을 휩쓸며 ‘스마트폰 쇼크’를 가져왔던 지난해 1분기(1∼3월) 이익률은 0.4%로 급감했다. ‘면도날처럼 얇은’ 마진이었다. 터치스크린 휴대전화가 뜰 때는 밤을 새워 이런 휴대전화 개발에 매달리고 스마트폰이 뜰 때는 스마트폰에 매달리며 제품을 빠르게 만들어 싼값에 팔았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 팬택 제공
박병엽 팬택 부회장. 팬택 제공
덕분에 LG전자보다 훨씬 빠르게 스마트폰 시장에 발을 디뎠다. 또 휴대전화 판매의 핵심 고객인 이동통신사를 설득하기 위해 박 부회장과 영업담당 임원들은 ‘무박 3일’ 식의 해외출장을 소화한다. 최근 이 회사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의 거래업체 평가에서 3년 연속 1위를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생존 전략은 장기성과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고, 직원들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또 이익률이 워낙 낮아 미래에 대한 투자도 쉽지 않다. 팬택은 지난 10년 동안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약 2조 원을 썼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R&D 비용은 지난해에만 9조 원이 넘는다. 애플도 지난해 약 2조 원을 R&D 비용으로 썼다. 팬택은 20주년을 맞아 매출을 2015년까지 10조 원대로 올리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덩치를 키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박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실패할 여력이 없다”며 “한국의 중소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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