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인간의 지혜를 넘어설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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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데이지. 뭘 어찌 해야 할지 대답을 들려줘. 나는 반쯤 미쳐버렸어. 당신을 사랑하니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에 만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은 주인공 데이브에게 애원합니다. 데이브가 할의 모듈(부품)을 하나씩 뽑으며 시스템을 중단시켜 나가자 “그만둬요, 데이브”라며 점점 자신이 처음 만들어지던 초기 상태로 퇴행해 일종의 ‘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를 부르게 된 거죠.

이 노래의 제목은 ‘데이지 벨’입니다. 1961년 미국 IBM이 만든 컴퓨터 ‘IBM 7094’가 음성과 반주를 합성해 실제로 불렀던 노래였죠. 이는 ‘컴퓨터가 부른 최초의 노래’로 기록돼 있습니다. 할의 기원이 IBM에 있다는 은유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HAL이라는 이름 각 글자의 바로 다음에 오는 알파벳을 모으면 ‘IBM’이 됩니다. 1960년대의 IBM은 그렇게 ‘두려운 신기술’을 가진 첨단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IBM의 신화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같은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면서 IBM은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들이 운영하는 ‘늙은 기업’처럼 여겨지게 된 거죠.

그 뒤 IBM은 기업용 컴퓨터 시장에 조용히 머물러 일반인의 시선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IBM은 엉뚱한 곳에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할을 현실 세계로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고 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IBM에 의해 다시 탄생합니다. 단지 이름만 ‘왓슨’으로 바뀌었을 뿐 할과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지난해 미국 뉴욕 주 IBM 왓슨연구소에서 이 기계를 직접 취재했습니다. 당시 연구원 가운데 누구도 왓슨을 얘기할 때 사물을 뜻하는 ‘그것(it)’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왓슨은 사람처럼 이름으로 불리거나 아니면 ‘그(he)’라고 불렸습니다. 약간 섬뜩했지만 이상하게 여긴 건 저뿐이었죠.

당시 IBM은 왓슨을 ‘제퍼디’라는 유명 TV 퀴즈쇼에 출연시키기 위해 연습경기를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왓슨은 드디어 14일(현지 시간) 제퍼디 쇼에 출연하게 됩니다. 상대는 제퍼디 쇼에서 74회 우승한 역대 최다 우승자 켄 제닝스, 그리고 ‘왕중왕’전에서 제닝스를 꺾은 역대 최다 상금 수상자 브래드 러터였습니다. 첫 대결에서 왓슨은 러터와 함께 5000달러를 벌어 공동 1위가 됐고 제닝스는 2000달러밖에 못 벌었습니다. 이 대결은 사흘 동안 이어집니다.

그저 흥밋거리로 치부하기에는 왓슨의 의미가 큽니다.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기존의 컴퓨터는 인터넷의 지식을 이용했습니다. 교과서를 펼쳐 놓고 ‘오픈북’ 시험을 쳤던 셈이죠. 반면 왓슨은 독립된 개체입니다.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지 않은 채 새로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학습하면서 지식을 키웁니다. 기계가 매년 빠른 속도로 소형화되면서 동시에 성능이 높아진다는 걸 감안하면 왓슨은 몇 년 뒤 우리 옆에 다가와 스스로 생각하고 말을 거는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미래는 결코 먼 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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