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만 통과시켜주자” 성의표시 고육책?

동아일보 입력 2010-09-20 03:00수정 2010-09-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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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속앓이 취업 청탁의 압력이 거세지고 그 방식이 교묘해질수록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처 방안도 함께 진화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센 기관이나 주요 VIP 고객의 청탁에 가장 보편적인 대응은 ‘서류전형 통과시켜 주기’다. 연매출 5000억 원 안팎의 한 중견기업 임원은 “청와대, 국가정보원, 관련 중앙부처 인사가 ‘그 지원자 좀 잘 챙겨 달라’고 하면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한다”고 귀띔했다. 최종 합격은 보장할 수 없으므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란 설명. 그러나 이 성의만 해도 상당한 특혜에 해당한다. 이 회사의 입사 경쟁률은 수백 대 1에 이른다.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시험을 볼 수 있는 지원자는 보통 최종 합격자의 10배수 정도. 10명을 뽑는데 1000명이 지원했다면 900명은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는 뜻이다.

채용시험 결과를 남들보다 몇 시간 또는 하루 먼저 알려주는 것도 기업 임원들이 애용하는 대처법이다. 5대 그룹의 한 임원은 “친인척이나 주요 거래처 임원들이 ‘인턴 채용 결과만이라도 좀 일찍 알려 달라’고 부탁하는 때가 많은데 이마저도 안 들어주기는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한 정보기술(IT) 대기업은 인턴 채용 때 한 대학생이 발표 몇 시간 전에 “나는 합격했다”고 친구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다른 지원자들로부터 “선발 과정에 불공정성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항공해운 업계의 한 임원은 “취업 청탁이 들어오면 ‘면접은 이렇게 준비해라’ ‘자기소개서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성의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입사 시험을 아주 어렵게 내 지원자 수를 줄이고 청탁도 감히 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례도 있다. 모 국책은행의 간부는 “시험이 워낙 어려워 청탁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인사담당 임원도 “삼성 지원자는 예외 없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통과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SSAT 성적을 높게 조작해 달라’는 청탁을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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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정치인은 자신의 친인척 채용을 부탁하기 위해 모 그룹의 대주주를 직접 만났지만 해당 그룹에는 친인척의 전공에 ‘맞춤한 자리’가 없었다. 결국 그 그룹과 가까운 다른 그룹의 계열사 영업 분야에 취직시켜 주는 선에서 청탁을 해결했다고 한다. 청탁 과정을 몇 차례 돌려 처리한 ‘스리 쿠션 청탁 대응’인 셈이다. 일부 금융회사는 주요 거래처나 핵심 VIP의 자녀를 배려 차원에서 입사시켜 준 뒤 벅찬 일을 맡겨 스스로 도태되도록 하는 일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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