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제도 도입한 기업들 ‘회계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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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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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제회계기준 조기도입 독려하더니 “올해는 종전대로”

세법 보완 안돼 ‘뒤통수’
재무제표 다시 작성하느라 해당부서들 연일 야근 중

정부 당국의 권유로 국제 기준에 맞춘 새 회계제도(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IFRS)를 미리 도입한 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제도를 조기 도입한 기업들은 2009년분 법인세를 신고할 때 관련 세법이 새 제도에 맞게 보완되지 않아 종전 기준에 맞춰 회계작업을 처음부터 새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2011년부터 이 제도를 의무 도입해야 하는 소규모 상장기업들은 준비하는 데만 1년 이상 걸리고 비용도 많게는 10억 원 정도 들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22일 증권업계와 관련 기업에 따르면 지난해 STX팬오션을 비롯한 14개사가 IFRS를 도입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포함한 27개사가 올해 1분기 결산부터 도입한다. 이들 14개사는 자회사를 모두 포함시켜 연결재무제표를 만들었으며 이를 토대로 법인세를 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말 “법인세법상 기준이 되는 회계제도는 기존 회계제도”라며 법인세를 내려면 기존 제도에 맞춰 재무제표를 다시 작성하라는 공문을 14개사에 보냈다.

이미 회계처리 시스템을 바꿔 재무제표를 작성해 온 기업들은 “힘든 회계업무를 두 번이나 반복하게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초 정부에서 새 제도 조기 도입을 독려했기 때문에 바뀐 회계기준대로 법인세를 내면 되는 줄 알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는 것. 한 회사 관계자는 “법인세 신고기한인 3월 말에 맞추려면 3월 초까지 기초작업을 끝내야 세무대리인의 검토 뒤 서류를 제출할 수 있어 해당 부서는 연일 야근 중”이라고 말했다.

회계제도 변경에 따른 세법 보완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현재 조세연구원 등 관련 기관들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공동으로 연구 중”이라며 “올해 말까지는 세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새 제도는 상장기업에만 의무 적용하기 때문에 이를 도입하지 않는 비상장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겨 해법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규모 상장사들은 남은 기간이 길지 않고 비용 부담도 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새 제도는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모든 자회사와 특수목적회사의 실적을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회계담당 부장은 “해외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공장 등 5개 법인의 수치를 연결해야 해 시간과 인력,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더구나 새 제도는 원칙만 마련했을 뿐 감가상각방법 같은 세부기준을 금융감독원이 제시할 수 없게 해 ‘모범답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는 격”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새 제도의 취지는 회계처리 방법을 기업이 고민해서 선택하고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 제도가 자리 잡으면 국제 자본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의 회계장부를 곧바로 사용할 수 있어 해외증시 상장 같은 작업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135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새 제도 도입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으로 나왔다”며 “자산 규모 5000억 원 미만 기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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