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 상대 알고보니 70%가 국내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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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상의, 기업 1000곳 조사
메모리 반도체-HDTV 등
국내 경쟁업체끼리 충돌
주력분야 비슷해 소송많아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미국의 특허전문 로펌인 ‘핼러 & 나이로’로부터 이동통신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을 당했다. A사의 발목을 잡은 이 특허는 원래 국내 한 국책연구소가 개발한 것을 국내 기업인 B사가 인수한 것이었다. B사는 국내의 특허펀드와 손잡고 미국 통신업체인 AT&T, 버라이즌 등을 대상으로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통신업체는 책임을 면한다’는 계약조항에 따라 결국 미국에 휴대전화를 수출한 A사를 향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A사의 특허담당 팀장은 “겉보기에는 미국 로펌과 미국 통신업체 사이의 소송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특허펀드와 한국 기업 사이의 소송이나 다름없다”며 “국책연구소가 국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개발한 기술을 사용했는데 10여 년 만에 특허침해 소송으로 돌아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16일 경영계에 따르면 A사 사례와 같이 한국 기업이 같은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검은 머리 특허괴물(Patent Troll·특허를 무기로 소송으로 돈버는 특허전문회사)’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통신 대기업인 C사는 최근 미국 지사를 통해 자사(自社)의 특허를 침해한 기업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등 현지 로펌을 통한 소송을 추진 중이어서 ‘검은머리 특허괴물’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조 대기업인 D사도 국내 특허펀드를 통해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다른 기업과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은 4세대(4G) 이동통신,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메모리 반도체, 고화질(HD) TV 등 주력 분야가 비슷하기 때문에 투자가 한창 진행 중인 신성장동력 사업이 본격화되면 이와 같은 특허소송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특허전문 컨설팅업체인 테크아이피엠을 운영하는 이근호 사장은 “한국 기업이 자신의 기술에 대해 국내외에서 특허 사용료를 받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표적은 결국 경쟁관계인 다른 한국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기업끼리 비슷한 기술을 공유하는 일이 많고, 서로의 기술활용 내용을 상세히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6일 국내 기업 1000여 곳을 대상으로 특허분쟁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특허소송 등 지식재산권 분쟁 상대는 해외 기업(39.8%)보다 국내 기업(69.9%)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복수응답). 또 소송을 제기한 국내 기업은 대부분 경쟁사(94.3%)이고, 해외 기업은 대부분 미국(64.4)업체였다.

대한상의 산업정책팀 김현수 과장은 “해외 기업의 소송은 로열티를 받기 위한 것이지만 국내 기업 간 소송은 시장을 선점하려는 목적이 대부분”이라며 “경쟁업체간의 시장 확보 경쟁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 간 특허소송은 서로의 발목을 잡아 대외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 문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전산 보안시스템 특허를 보유한 국내 한 대기업이 후발 기업들에 특허 침해중단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년 동안 맞소송을 진행했고, 이로 인해 제품 개발에 차질을 빚어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대한상의는 특허 분쟁을 거치며 스스로 직간접적인 이익을 봤다고 평가한 기업은 26.5%에 그친 반면 손해를 봤다는 기업은 58.9%에 달했고, 특히 분쟁에서 이기고도 피해를 봤다는 기업이 33.2%나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상의 조사에서 특허소송 등 지적재산권 분쟁을 최근 3년간 겪었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22.8%에 이르렀으며,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이 31.2%, 중소기업이 19.3%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 중 74.2%는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분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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