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으로 굴러가는 ‘3無 운수회사’

  • 입력 2009년 7월 27일 02시 57분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KD그룹의 ‘사우가족 교양강좌와 간담회’에 참석한 임원과 사원 부인들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웃고 있다. 사원 7857명 모두가 정규직인 이 회사에는 37년째 노사분규가 없다. 가운데 짙은 안경을 쓴 남성이 허명회 회장. 박영대 기자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KD그룹의 ‘사우가족 교양강좌와 간담회’에 참석한 임원과 사원 부인들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웃고 있다. 사원 7857명 모두가 정규직인 이 회사에는 37년째 노사분규가 없다. 가운데 짙은 안경을 쓴 남성이 허명회 회장. 박영대 기자
비정규직 없고, 노사분규 없고, 가족-상사 ‘장벽’도 없어…

KD그룹, 노조에 임금 백지위임

동결 제시하자 사측이 “좀 올리자”

7857명 사원 가족 한마당 잔치땐

“남편 지갑 확인해라” 화기애애

“임금인상률 0%라니요? 조금이라도 인상합시다.”(사측) 덩그러니 ‘0%’만 쓰인 백지를 들고 노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안 됩니다. 0%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노조 측)

회사는 월급을 더 주겠다고 하고 노조는 인상하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흔치 않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KD그룹이다. 경기고속 대원고속 등 12개 운수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KD그룹은 5년째 사측이 아닌 노조에 임금 협상을 백지위임했다. 지난해 고유가로 회사가 어려웠을 거라 걱정한 노조는 올해 백지에 ‘인상률 0%’를 적어냈다. “회사 이미지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사측이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는 이 특별한 회사의 사원 가족이 함께한 ‘사우가족 교양강좌와 간담회’가 열렸다. 10년째 이어져온 행사에 참석자들도 늘어나 1000여 명의 승무사원 부인들이 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1년에 한 번 국내 최고급 호텔을 방문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 사원 부인들은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호텔 연회장을 찾았다.

“신문에선가 본 것 같아요. 비정규직 때문에 말이 많다고요?” 비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는 이 회사 사원들에게는 비정규직을 둘러싼 문제도 남의 얘기다. 회사 전체 사원이 7857명이고 6763명의 승무사원 외에 정비원 조리사 경비원도 있지만 모두 정규직 사원이다. KD그룹 허명회 회장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똑같이 일하면서 누구는 회사 식구가 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면 노노 갈등, 노사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비정규직을 없앴다. 1972년 버스 30대로 출발한 회사가 4396대 버스를 운행하는 큰 회사가 되기까지 단 한 차례도 노사 분규가 없었다.

비정규직이 없고 그에 따른 노사 분규가 없다 보니 회사는 가족 같다. 사원 부인들은 허 회장을 ‘친정아버지’처럼 느낀다. “친정아버지보다 더 좋을 때도 있어요.” 70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회장이지만 사원 부인들은 스스럼없다. 허 회장과 임원진, 사원 가족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는 간담회 자리에서도 소소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회사에서 김장철마다 공짜로 나눠주는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요. 평소에도 사다 먹을 수 없을까요?” “승무사원복에 매는 넥타이를 자동식으로 바꿔주세요.” 황당한 요구에도 임원진은 정중하게 답변했다. “넥타이 매는 시간 1분을 무사고 안전운행을 다짐하는 시간으로 가지면 어떨까요?”

허 회장은 사원 부인들을 모셔 놓고 직접 월급 명세에 포상금 기준까지 상세하게 알려줬다. “월급 외에 더 받을 수 있는 돈이 이만큼인데 월급통장 따져보고 모자라면 바가지 좀 긁어라”라고 웃으며 일러줬다. 가정사도 애틋하게 챙기는 회사의 잔정에 감동받았다는 이들도 많다. 회사는 매달 사원 부모들의 통장에 노부모 효도 지원금 5만 원을 직접 입금해 주고 지난해 문을 연 ‘KD푸드피아’에서 회장과 사원들이 직접 김장김치를 담가 모든 직원이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

사원 부인인 김명순 씨(51)는 “‘회장님 우리 남편 월급 잘 받았어요. 오래 건강하세요’ 하고 종종 문자도 보내요”라고 말했다. 회장은 9년 전 사원 가족에게 개인 휴대전화 번호도 공개했다. 친정아버지에게 하듯 남편의 바람기를 상의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엔 가불을 해달라는 전화도 있었다. “오죽 어려웠으면 전화를 했겠느냐”고 허 회장이 직접 사정을 봐주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물건 만들어내는 데가 아니라 사람이 서비스를 하는 회사입니다. 튼튼한 노사관계, 편안한 가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회사가 될 수 없지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