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의 굴욕… 작황 좋아 가격 3분의 1로 ‘싹뚝’

  • 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1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있는 농협하나로클럽은 지난 주말 다다기오이(껍질이 흰 오이)를 개당 150원에 팔았다. 주부 이정자(56·경기 용인시) 씨는 “전에는 오이 값이 비싸 샐러드용으로 3, 4개만 샀다”며 “가격이 쌀 때 오이지나 피클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이 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팔리던 가격의 3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다. 농협은 1800t의 오이를 산지(産地)에서 폐기하고 있다. 출하량을 줄여 가격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경 20kg 한 상자에 2만5278원 하던 취청오이(껍질이 짙은 녹색인 오이)의 경우 지난달 7600원대로 값이 떨어졌다.

○ 오이 농가의 잔인한 5월

오이는 비닐하우스와 노지(露地) 재배를 통해 일년 내내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작물이다. 시기적으로 5, 6월에 오이 출하량이 많아 이때 가격도 싸다. 겨울에는 난방비용 때문에, 여름에는 고온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데 소비는 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른다.

최근 오이 값이 폭락한 데는 시기적 요인도 있지만 유통업계는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보통 오이가 다 자라기까지는 30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4, 5월 기온이 평년보다 3, 4도 웃돌면서 오이 생육기간이 15∼20일로 줄어들었다. 롯데마트 야채담당 최진아 상품기획자(MD)는 “고온으로 비닐하우스 재배 대신 노지 재배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더욱이 오이는 한번 씨앗을 뿌리면 7, 8번 수확할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오이 홍수’라고 할 정도다.

지난해 오이 값이 강세를 보이면서 오이 재배면적은 10%가량 늘었다. 지난해 가격이 폭락했던 고추나 토마토 재배 농가들이 오이 재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 오이 값 당분간 약세

출하량 일부가 산지에서 폐기되고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오이 값은 소폭 오름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정보센터는 최근 내놓은 ‘6월 과채(果菜)관측월보’에서 지난해 바이러스 피해를 보았던 일부 지역의 오이 작황이 좋고 면적당 출하량도 늘어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마트 야채담당 김태권 과장은 “오이나 호박은 배추와 달리 계약재배가 이뤄지지 않아 산지 농가들이 가격 하락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에서 오이농사를 하는 박문근 씨는 “오이를 트럭에 싣고 도시에 나가 팔고 싶지만 유류비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