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웅]대기업노조 도덕성 운동 펼쳐야

  • 입력 2005년 1월 23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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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의 채용비리를 보며 우리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 기아차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노조 간부에게 채용추천권이 할당되고 취업쿼터가 수천만 원에 거래되는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취업 장사’는 최근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더욱 성업해서 취업쿼터는 3000만 원까지 호가한다. 취업브로커도 생겨났다. 모든 제도와 관행이 필요에 따라 생성된다는 것은 노벨상의 경제학자 코스의 법칙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노조가 비정규직을 팔아 배를 불려 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도덕적 타락의 극치다. 노조의 힘은 높은 도덕성과 연대의식에서 나온다. 기업의 부당한 착취에 맞서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권익을 지키며 그들과 강한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체 근로자의 11%에 불과한 노조, 그중에서도 일부 강성노조가 노동시장의 불안을 주도한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오늘날 기업의 부당한 착취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일부 힘센 노조가 끝없이 벌이는 불법·과격 투쟁과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문제다. 근로계층 간의 끈끈한 연대는 간 데 없고 노노(勞勞) 갈등만 심화된다.

▼약자권익 말하며 취업장사▼

이런 가운데 노조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쟁점으로 들고 나온 것은 아이러니다. 결국 노조 대 비노조, 정규직 대 비정규직, 기존근로자 대 청년실업자 간의 극심한 대립을 빚어낸 강성노조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겠다는 것일까? 그런 노조가 뒤로는 비정규직의 취업 장사를 하다니 말이 되는가?

일각엔 기아차 사측이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 노조에 (직원채용)추천권을 주었다는 주장이 있고 노사가 담합해 취업 장사를 해 온 구조적 채용비리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가하면 오래된 관행인데 기아차만 그렇겠느냐는 등의 추측도 구구하다. 어느 쪽이 됐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조의 압력 때문이든, 사측이 노조를 매수하기 위한 것이든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뽑는다면 글로벌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이 매우 걱정스럽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물색 모르고 기아차에 취업하려고 문을 두드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배신감은 또 어떻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들이 말로는 ‘인재 제일’을 내세우며 실제로는 정실인사, 청탁인사 등이 적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는데 취직자리를 놓고 거액의 돈거래까지 기승을 부린다면 우리의 노동시장은 갈 데까지 간 것 아닌가.

우리가 자녀 교육에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자녀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 떳떳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절실한 소망을 기업과 노조가 이렇게 농락할 수 있는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 해서 교육개혁, 대학개혁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에 앞서 기업의 채용구조 개혁이 더욱 시급한 것 같다.

▼대오각성 사회적 책임 질때▼

일부 대기업의 강성노조는 경기가 좋든 나쁘든, 회사가 이익을 냈든 아니든 해마다 파업을 일삼는다. 그들은 투쟁만 하면 되지만 그들 때문에 중소기업은 쓰러지고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들의 고통과 절망은 가중된다. 오죽하면 친노 정책을 견지해 온 노무현 대통령조차 일부 노조의 이기적이며 비윤리적인 정치투쟁을 비판했겠는가. 최근 노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소를 위해 고용이 안정되고 근로조건이 양호한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협력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제 노조는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도 ‘억울한 깃털’도 아니다. 사회적 강자가 된 만큼, 노조는 투쟁에 못지않게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노조도 기업에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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