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훈]정부 쌀재협상 불신만 키운다

  • 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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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서울 도심에선 쌀시장 추가개방을 반대하는 3만여 농업인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며칠 후면 더 많은 농민이 다시 모일 것이라고 한다. 이러다간 지난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반대 때처럼 겨울 내내 전국의 주요도시가 농민의 시위로 꽁꽁 얼어붙을지 모른다는 예감까지 든다.

▼“개방대세”만 강조 농민들 분노▼

정부가 개방대세론만 내세우며 책임회피적인 태도로 나가는 듯해 의혹과 반대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피해는 막중한데 정책대안은 겉돌고 빈약하다. 따지고 보면 1995년 발효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의 후속조치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쌀시장 추가개방 재협상과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는 농업과 농민이 그 일차적인 피해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라의 식량주권, 그리고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의 훼손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동안 정부는 올해 안에 쌀 재협상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2005년부터 무조건 관세화(완전개방)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UR협정엔 2004년까지 이해당사국끼리 쌀 재협상을 한다고만 돼 있을 뿐 협상 결렬 때의 처리 규정이 없어 WTO측도 내심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WTO는 문제를 분쟁조정위에 넘기거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2∼3년의 시간이 걸린다.

결국 ‘2005년부터 무조건 관세화’론은 협상실패를 미리 내다보고 책임을 회피해 두려는 속셈인 듯하다. 마치 한중 마늘협상 밀실 합의 때를 보는 느낌이다.

국민소비량의 4%까지 개방한 UR협상 때 적용했던 기준치(1986∼88년 소비량)를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해, 2015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국민소비량의 8∼9%를 의무수입하겠다는 식으로 협상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금 국민 쌀 소비량은 1986∼88년 당시보다 훨씬 줄었다. 당시의 소비량 8∼9%는 현 시점에서 12∼14%에 해당한다. 그만큼 수입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중국이 억지를 쓰기 때문에 아예 완전개방(관세화)하는 문제를 국민대토론에 부치겠다는 당국의 발표 역시 그 의도를 종잡을 수 없다. 1999년 관세화를 단행한 일본은 1300%의 관세를 매겼다. 그러나 우리 정부 당국은 396% 관세율 적용을 내비치고 있다. 그 배경이 도무지 모호하다. 1995년부터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자 애쓸 때 우리 정부는 하찮은 조건만 달고 앞장서 동의해줬던 사실을 이번 협상대표단이 얼마만큼 중국 당국에 상기시키며 협조를 요청했는지도 의문이다. 향후 매년 5000만t 안팎의 식량 대수입국으로 전락할 중국에 대해 잠재적 식량부족국끼리의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얼마나 설득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의혹에 대한 명쾌한 해명과 과오를 수정하겠다는 의지가 선행하지 않고 개방대세론만 갖고선 농민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각종 단기대책 처방들이 겉돌고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기에 정부 당국은 더 늦기 전에 쌀 재협상 내용을 전면 재검토, 재정비해야 한다.

▼중국 설득에 최선 다했는지 의문▼

다른 한편으로 WTO 규정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 우리 쌀과 농산물의 학교 및 군 급식 제도화, 이미 법으로 정하고 있는 식량자급률 목표설정 발표,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한 획기적인 친환경 유기농업정책 실시, 적자에 허덕이는 미곡종합처리시설의 현대화 지원, WTO가 허용하고 대통령이 공약한 농업인에 대한 소득수준 20%의 직접지불제도 확충 등을 서둘러야 한다.

차제에 과거 각종 농업협상 때마다 실패와 실망만 안겨준 비전문가 위주의 소극적 통상외교 조직에 대해서도 해체 수준의 개혁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김성훈 중앙대 교수·경실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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