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뚝’ 물가 ‘쑥’… 이자생활자 “한숨만…”

  • 입력 2004년 8월 16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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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남긴 유산 5억원으로 대학과 고교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 박모씨(47)는 최근 식당 주방일을 알아보고 있다. 정기예금에 넣어둔 5억원의 이자만으로는 자녀 뒷바라지와 생활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연 4%였던 지난해 세금을 빼고 매달 이자로 139만원을 받았지만 최근엔 129만원(연 3.7% 기준)으로 줄었다.》

연금생활자 이모씨(72) 부부도 갈수록 줄어드는 이자수입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한다. 교원공제회에 1억5000만원을 맡기고 매달 타 쓰는 이자는 1998년 132만원에서 최근엔 59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그나마 원금 중 2000만원을 비과세 상품인 생계형 저축에 넣어 이자가 1만∼2만원가량 많은 편이다. 이씨 부부는 먹는 것 외에는 사실상 지갑을 열지 않는다.

▽심화되는 ‘마이너스 금리’=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은행 예금 금리가 떨어지면서 이자소득으로 살아가는 연금 및 금리생활자의 생활고는 더욱 커지고 있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4%로 전월보다 0.8%포인트 올랐지만 저축성 수신금리는 전월과 같은 3.8%여서 실질금리(수신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가 ―0.6%인 것으로 추정됐다.

물가상승률이 예금금리를 웃돈 것은 작년 3월(―0.2%) 이후 처음. 이자소득세(16.5%)까지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 폭은 더욱 커진다.

조흥은행 서춘수 재테크팀장은 “정기예금 금리 연 3.7%를 기준으로 할 때 물가상승률 등을 포함하면 마이너스 금리 폭은 ―0.9%까지 확대된다”고 말했다. 1억원을 1년 동안 정기예금에 넣으면 90만원을 손해본다는 뜻이다.

▽쥐꼬리이자로 노후대비 어떻게=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모씨(70)는 올해 들어 새벽 약수터에 가는 일 외에 외출을 삼가고 있다. 친지와 친구 집을 오가는 데 드는 교통비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김씨 역시 은행 정기예금에 2억원을 넣고 매달 51만원가량을 타 쓰고 있다.

하나은행 김성엽 분당 백궁역지점장은 “금리생활자들에게 원금은 인생의 마지막 보루”라며 “원금 손실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은행 금융상품으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눌러있다”고 말했다.

간혹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선 ‘용기 있는’ 금리생활자도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지금은 ‘관리비와 대출이자’ 부담으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김 지점장은 귀띔했다.

▽소비위축 더 심해질 듯=금융연구원 김병연 연구위원은 “은행이 예금을 받아 안전하게 굴릴 곳이 없으면 추가적으로 예금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물가가 다소 안정되더라도 수신금리 하락에 따른 실질금리의 마이너스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더욱 우려되는 것은 마이너스 금리 확대로 소비부진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개인들은 노후대비 저축규모를 늘리는 대신 소비를 줄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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