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만이 살길이다]<5>인재에 투자해야 미래 있다

  • 입력 2004년 1월 7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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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지난해 전용기를 50차례 해외로 띄웠다. 비행시간은 1300시간. 전용기를 쓰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해외에서 핵심인재를 확보하는 것. 인재 확보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재에 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핵심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장단이 물러날 각오를 하라"고 입을 모았다.

핵심투자의 대상이 설비에서 '사람, 노하우, 기술, 지식'등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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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초월 인재 확보하라"

○인재 모델이 바뀐다

미국의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는 지난해 서울에서 기자와 만나 “사회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앞으로 어떤 산업이 유망할지 알 수 없다”며 “어떠한 변화든 제대로 예측해서 대처할 수 있는 인재에 투자하라”고 충고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초월함수의 미적분 문제가 있다 치자.

투표로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해법은 제대로 교육받은 수학자 한두 사람이 내놓는다. 이창협 삼성종합기술원 부장은 “차세대 성장에 필요한 유일의 기술, 최고의 기술은 수만명이 모여 밤새 토론한다고 개발되지 않는다”며 “창의적 인재들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의 불확실성과 요소투입형 경제의 한계는 인재의 모델을 바꿔놓았다.

그룹 공채로 수천명씩 신입사원을 뽑던 기업들이 이제는 국제 감각을 갖춘 천재와 수재를 요구한다. 직원은 몸으로 때우고 기업은 돈과 인력 수를 늘려 경영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인재상의 변화는 요소투입형 경제가 한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 경영론’을 주창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작년 “사장급 연봉을 주는 인력을 많이 확보했다”고 보고한 계열사 사장에게 “사장의 2∼3배 연봉을 받는 인재를 스카우트하라”며 질타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내부 교육과 경험을 통해 CEO를 양성하는 ‘글로벌 인재 경영론’을 주장하고 있다.

정진화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일을 알 수 없는 21세기에는 ‘제조업 공동화’보다 ‘인재 공동화’가 더 무섭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990∼2001년 경제성장의 90.4%가 자본과 노동의 투입으로 이뤄졌다. 신기술 개발, 생산성 향상 등이 성장에 기여한 비율은 9.6%에 불과하다.

○한국의 위기는 인재양성의 한계

LG전자는 2000년 국내에서 인도인 연구인력 40명을 채용했다. 이 회사는 올해 인도 출신 연구원을 100명으로 늘렸고 현지에서의 아웃소싱 인력까지 포함하면 300명의 인도인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인력 채용도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은 올해 해외 연구개발센터를 9개에서 12개로 늘릴 계획이다. 인재 확보를 위한 방안이다. LG전자, 현대자동차 등도 해외연구센터를 통해 인재를 충원하고 있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고 인력의 질도 좋기로 소문난 나라. 그런데 국내에 대졸 실업자가 널려 있는데 기업들은 왜 해외로 눈을 돌릴까? 국내 대학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기업의 고민을 이해할 만하다.

입시 때 여러 의과대 중 가장 선호도가 낮은 곳의 마감이 끝나야 공대 지원이 본격화된다. 공대생들은 졸업에 필요한 140학점 중 40학점 정도의 전공학점만 이수해도 졸업장을 받는다. 선진국의 필수 전공학점은 60학점을 넘는다. 기업에서 실습을 하는 현장교육 기간은 길어야 4주. 그나마 한국 공대생의 60%는 현장교육 경험 없이 졸업한다. 물론 창의성 교육은 없고 공학과 경영학의 접목, 국제 감각 등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론수업만 한다. 인력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대기업은 대졸 신입사원 1명의 입사 첫해 교육비로 평균 1646만원을 썼다(지난해 12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5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본보 조사). 또 청년 구직자는 늘어만 가는데 기업은 ‘사람이 없다’며 탄식한다.

김흥식 LG전자 인사팀 부장은 “반면 해외인재들은 기초학문이 탄탄하고 영어를 잘한다. 무엇보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부실한 인력 공급은 첨단기술 분야뿐 아니다. 컨설팅 업체인 ‘부즈알렌 앤 해밀턴’의 최준 이사는 “전략, 마케팅, 생산성 향상 등에 대한 관리직의 축적된 능력과 고민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획일적 평등 교육에서 벗어나야

평등에 집착한 교육이 고효율 경제에 맞는 인재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평등주의와 포퓰리즘이 대학 정원의 급증과 부실한 교육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김창경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초중고 교육의 집단 평준화 탓에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과 물리를 대학에서 가르친다”며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짜리 신입생’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2만달러 시대에 맞는 졸업생을 배출하느냐”고 말했다.

대학의 변화와 산학협력은 인재양성을 위한 선결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A그룹 기술담당 부장은 “최근 수십명의 교수들이 연구비 지원을 요청해 왔다. 무엇을 연구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기업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하더라. 스스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교수는 드물다”고 말했다.

안현호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과장은 “대학은 졸업생의 능력으로 경쟁하고, 기업은 산학협력을 인재 확보를 위한 선(先)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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