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MH측 '逆계열분리안' 내놔…공정위 "말도안돼"

  • 입력 2000년 6월 28일 18시 52분


현대그룹 내분이 ‘현대자동차 분가문제’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현대구조조정본부는 28일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지분 정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현대자동차를 그룹에 잔류시키는 대신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영향력이 강한 계열사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역(逆)분리안’을 내놨다.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회장 인사문제로 촉발된 정몽구(鄭夢九)현대차회장의 회장직 박탈, 자금난문제로 야기된 3부자 동반퇴진선언과 정몽구회장 반발에 이은 ‘3라운드 파문’을 맞은 셈이다.

▽현대와 공정거래위의 입장〓현대 구조조정본부는 이날 “자동차 부문 계열분리문제를 공정거래위원회와 교섭해왔으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자동차지분 문제로 접점을 찾지 못해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 등 현대차소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현대 계열사를 현대그룹에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같은 방안을 29일경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소그룹을 현대그룹에서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면 반대로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이끄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현대에서 분가해나가겠다는 것.

현대측은 역분리안의 법적 근거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측 계열사에서는 지분을 대부분 처분했고 경영일선 퇴진도 선언했기 때문에 자연인으로 돌아간 정 전 명예회장이 자동차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현대측의 이같은 방안에 대해 정몽구회장측은 물론 공정위도 “말이 안되는 방안”이라는 입장. 강대형(姜大衡) 공정위 독점국장은 “공정거래법상 친족분리는 덩치가 큰 모기업으로부터 작은 기업이 떨어져 나오게 돼 있는데 현대의 역분리 방안은 여기에 어긋난다”며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한 MH(정몽헌회장) 계열사의 자산은 69조원인 반면 MK(정몽구회장) 계열사는 27조원에 불과하므로 자동차를 분리해야 받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의 속사정〓사실 역계열분리안은 현대측이 이미 한달전 공정위에 제안했다 거부당한 안. 김재수(金在洙)구조조정본부장도 28일 “공정위에 들어가면 재떨이가 날아올까봐 못들어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공정위의 입장을 잘 알고있었던 것.

그렇다면 공정위가 역분리안을 거부할 것을 뻔히 알면서 무리하게 계열분리신청서를 제출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계열분리의 관건은 ‘왕회장’과 정몽헌회장측이 왕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정리, 자동차 부문을 완전히 분가해주느냐’가 핵심 사안.

MH측의 속셈은 결국 이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 MH측근들은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MK가 자동차를 계속 이끌면 자동차 경영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며 ‘왕회장’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MK측은 “MH의 가신들이 건강이 좋지 않은 왕회장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부자간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MH측이 앞으로 왕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지렛대로 이용, 자동차까지 장악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때문에 MK측은 왕회장의 지분을 ‘시한폭탄’으로 보고 하루빨리 제거되기를 바란다.

▽현대계열분리의 앞날〓자동차분리의 또 한가지 난관은 공정위의 판단. 공정위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MH 계열사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보고 자동차 지분을 팔아야만 자동차소그룹 분리를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공정위의 이같은 입장덕분에 MK측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현대와 공정위’의 갈등에 겉으로는 가담하지 않고 사태추이를 관망하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비한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아무튼 현대측은 올 6월말까지 자동차 계열분리를 약속했고 계열사분리안으로 내놓은 안을 공정위가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다. 현대측이 계열분리를 실천할 의사가 없으면서 공약(空約)을 남발했다는 시장의 의심을 계속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병기·이명재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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