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인터뷰]강정원 서울은행장

  • 입력 2000년 6월 6일 19시 47분


“이리들 다 들어와요. 이럴 때나 얼굴보면서 마음에 담아놨던 얘기를 하지….”

1주일 전 서울은행장에 취임한 강정원(姜正元·50)행장은 직원들로부터 ‘세븐일레븐’으로 불린다. 오전7시면 사무실에 나와 밤11시가 넘어야 퇴근하기 때문.

어느 날인가 늦은 저녁 강행장은 “우리 출출한 데 햄버거나 사다 먹자”고 말했고 그 뒤로 비서실 직원과 행장의 ‘야참’은 ‘일상’이 됐다. 비서실의 홍성화(37)대리는 “행장님과 얼굴을 맞대고 햄버거를 먹는다는 건 이전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8개월이나 행장없는 ‘대행’ 체제로 ‘키잡이’가 없었던 서울은행에 강행장이 취임하자 이 조직엔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건 서울은행이 ‘바닥’이랍니다. 하지만 지금이 ‘꼭대기’로 오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지요.”

인도네시아의 부실은행을 정상화했던 도이체방크가 서울은행에 대한 실사와 자문을 맡고 있는 등 그 어떤 때보다도 좋은 기회라는 것.

그는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우리가 스스로 변화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당할 것인지 선택해야한다”고 주문했다.

‘관치금융’이라는 특수상황으로 편하게 ‘장사’할 수 있던 시절은 지났고 이젠 세계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은행의 ‘말단 회로’까지 바꿔야한다는 것.

1979년 씨티은행에 입사, 83년 뱅크스 트러스트로 자리를 옮긴 뒤 최근 도이체방크의 한국대표까지 20년이 넘도록 외국계 은행에서만 몸담아온 강행장의 한국 은행에 대한 인상은 직원들의 ‘서비스’ 의식이 약하다는 것.

또 연공서열보다는 능력위주의 조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도이체방크에 있을 땐 자신의 상사가 대학 9년 후배였다는 것. 그는 “후배가 상사로 오면 당연히 회사를 떠나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를 고쳐야겠다”고 강조했다.

“외국기업에 있을 땐 조직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했어요. 거의 매년 조직개편을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죠.”

강행장 자신도 변화에 익숙하다. 국내 최연소 행장인데다 ‘연(緣)’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국내 졸업장이라곤 ‘중학교’ 달랑 하나뿐. 한국은행원이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는 홍콩에서, 대학은 미국에서 마쳤다. 중학교를 서울에서 마치고 1966년 경기고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한일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로 휴교령이 내리자 강행장의 부친은 강행장을 미국으로 ‘호출’했다.

아무래도 외국기업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한국기업에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강행장은 말했다.

“제가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3년간 근무했거든요. 그때 경험이 내내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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