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3년' 한국 멕시코와 닮은 꼴…수지악화 개혁부진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19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불과 3년도 안돼 개혁이 지연되고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 지표가 균열조짐을 보이자 한국이 멕시코처럼 ‘IMF 3년차 증후군’에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수지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지만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금융부실 처리에 필수적인 공적자금은 조달원칙조차 불투명한 현재의 상황이 멕시코가 밟았던 전철과 흡사하다는 것.

80년대초 민간자본의 대거 유출로 IMF 지원을 받은 멕시코는 정부의 경제재건 정책에 힘입어 한때 ‘반짝호황’을 누렸지만 개혁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으면서 만성적인 위기발생 국가로 전락했다.

한국은행도 2일 보고서를 통해 “정치논리에 의한 경제운용이 당연시되는 한 금융위기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한국 경제는 멕시코와 닮은 꼴?〓멕시코는 82년 12월 IMF와 36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에 합의한 뒤 금융 구조조정과 재정긴축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경기는 일시적으로 살아났지만 구제금융 3년차인 85년 총선과 지방선거 등으로 개혁이 후퇴하면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물가와 금리는 다시 치솟았다.

환은경제연구소 신금덕(辛金德)동향분석팀장은 “98년과 99년 한국이 대규모 국제수지 흑자를 낸 것은 우리 상품의 품질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으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강해진 덕택”이라며 “문제의 본질인 부채문제는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근본적인 해결이 안된 상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부실 정리를 위해 거액의 공적자금 조성이 불가피한 것도 멕시코와의 공통점. 95년 페소화 폭락으로 금융위기가 재연되자 멕시코 정부는 기업 및 금융부실을 떨어내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12%에 이르는 650억달러를 썼다. 당시 18개 시중은행 중 10개를 해외에 매각하거나 통폐합했지만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경제운용의 부담으로 남아있는 실정.

우리 정부가 이미 조성한 공적자금 64조원은 GDP의 15%선으로 세계 최고 수준. 그나마 20조∼30조원이 연내에 추가투입되면 그 비율은 20%대로 높아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멕시코 사례는 구조조정을 늦추다 시기를 놓치면 국민부담만 늘어나고 부실은 부실대로 커진다는 점을 교훈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당장의 성취에 도취해 수입을 늘렸다가 국제수지 흑자기조가 위협받는 상황도 멕시코를 빼닮았다. 2월말 현재 단기외채는 전체 외채의 30%인 413억달러로 98년말(307억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해법은 개혁뿐〓한은은 “중남미 국가들은 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구축하기보다는 단기적 성장에 치우친 탓에 경제 전반에 ‘거품’을 키웠고 결국 금융위기라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일부 계층의 개혁에 대한 저항과 정치논리가 경제를 압도하는 현상이 되풀이돼 개혁다운 개혁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중남미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

한은 이재열(李在烈)조사역은 “경제주체들이 개혁을 등한시하고 소비를 과도하게 늘리면 대내외 균형이 무너져 외국 환투기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면서 “금융부문에 대한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거품을 없애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재·박현진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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