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정부 "공개로 강하게" 재계 "법대로 조용히"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4분


정부가 특정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민간경제단체 간부를 경고한데 대해 지나친 행정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벌 개혁은 당연하지만 추진방식이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정부와 재계가 충돌하는 양상으로 비칠 경우 대외신뢰도만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 주장이 맞다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제대로 안하는 것이고 기업 주장이 맞다면 정부의 관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계가 형제간 경영권 다툼 등 전근대적 경영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외환위기 이후 거둔 구조조정 성과에 흠집을 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강력한 개혁의지를 확인해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대외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강력한 역공을 받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현재 다양한 채널을 동원하여 정부와의 물밑대화를 벌여나간다는 입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가?〓전경련 이병욱기업경영팀장은 “정부의 당연한 활동인 세무조사가 마치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비친다면 큰 문제”라며 “기업이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며 주어진 틀 안에서 소리없이 하면 된다”고 말했다.

A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쓰는 수단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이같은 행태가 반복되기 때문에 한국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꼽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 고위 관계자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한국에 대해 지적하는 사항 중 하나는 행정력의 자의적 사용”이라며 “세무조사를 당하면 기업의 업무가 마비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면 당연히 세무조사를 해야 하지만 분위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재벌들은 제대로 했나〓재경부 권오규경제정책국장은 “재벌의 경제력집중, 지배주주의 강력한 지배력, 과다한 내부거래 등 재벌의 문제점이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가 재벌개혁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권국장은 “현재 진행되는 재벌개혁 프로그램은 모두 당초 스케줄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최근의 사태는 재벌이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현대그룹 2세들의 경영권 다툼으로 한국기업의 족벌, 황제경영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대외신인도가 떨어졌다는 것. 정부로선 대외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재벌개혁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계도 정부의 이같은 지적에는 일부 수긍한다. 다만 개혁 방식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B그룹 관계자는 “재계가 정부개입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면서 “그렇다고 해도 정부의 개입은 가급적 내부적으로 조용히 이뤄지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전경련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대통령이 올해 안에 기업구조개혁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재벌개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면서 “문제는 무엇을 마무리하자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은 환경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해나가는 것”이라며 “재벌개혁의 목표가 경제력집중 완화인지, 지배구조 개선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재벌개혁은 연내에 끝날 일이 아니며 앞으로 계속해서 추진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임규진기자>mhjh22@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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