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委-재벌 '부당내부거래' 첨단두뇌戰

  • 입력 2000년 1월 13일 19시 56분


부당내부거래를 둘러싼 대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간의 ‘머리싸움’이 치열하다. 대기업은 새로운 내부거래 수단을 ‘개발’해내고 공정위는 이를 효과적으로 잡아낼 ‘그물’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는 이러한 ‘그물’ 중 하나.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완성돼 이달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30대 기업집단(재벌)에 관련된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그룹별 회사별로 내부거래 현황과 재무상황 등이 모두 입력돼 있어 부당내부거래 여부를 자동으로 판정해준다.

부당내부거래 조사 직원들이 채권 어음 등 기업의 재무와 관련된 책자를 탐독하는 것은 기본.

공정위의 이같은 작업은 무엇보다 대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 정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12일 개정한 ‘부당내부거래 심사지침’에 포함된 내부거래 유형은 ‘첨단수법’들의 집합장. 지난해 5대 재벌에 대한 3차 조사 결과 새롭게 적발한 부당지원행위의 유형을 정리한 이 지침에는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방법들이 대거 새로 등장했다.

가령 금융회사의 특정금전신탁에 가입하고 금융회사는 이 자금을 이용해 특수관계인 등의 기업 어음 또는 사모사채를 저리로 인수하는 경우, A계열 금융회사가 비계열 금융기관에 후순위대출을 해주고 이 금융기관은 A계열의 일반회사 회사채를 저리인수하는 경우, 국내 금융당국의 감시가 허술한 역외펀드를 이용해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고가로 매입하는 수법 등이다.

공정위 조사국 직원들은 “기업들의 내부거래가 갈수록 치밀하게 이뤄져 잡아내기가 힘들어진다”고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부당내부거래 조사 때는 기업의 금융거래 사정을 잘 아는 금융전문가를 10여명이나 임시 채용해 조사에 동원하기도 했다.

공정위 안희원(安熙元)조사국장은 “특히 글로벌 경제체제가 되면서 해외거래 관계를 이용한 부당내부거래가 앞으로 많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조사권한이 제약된 공정위의 입장에서는 이를 모두 잡아내기는 사실상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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