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금지원대책 안팎]『부도막고 보자』은행 달래기

  • 입력 1997년 12월 30일 19시 54분


정부가 30일 은행장들에게 『필요하면 외화건 원화건 지원할테니 기업들의 부도를 최대한 막아달라』면서 자금시장 단기 대책을 내놓았으나 시장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결국 연말을 어렵사리 넘기더라도 연초에도 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은 쉽사리 풀리지 않고 내년 3월까지는 유사한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른 기업들의 부도도 잇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 조치는 왜 나왔나〓은행들이 자신들의 존망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8%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걸려 있다고 판단, 기업에 대한 대출을 모두 끊어버려 기업의 무차별 부도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말을 그럭저럭 넘긴다고 해도 은행들은 내년 3월말까지 유가증권평가손을 장부에 전액 반영해야 하므로 자금줄을 더 조일 것으로 판단된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관계자들조차 『은행들은 올 연말 BIS비율에 이렇게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상한 일』이라는 반응을 나타내자 정부가 IMF의 양해하에 특히 수출업체에 대한 시장의 신용경색을 풀어 보려는 단기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조치 효과 있을까〓기업들은 기대 절반, 부정 절반의 반응을 나타냈다. 관련업계에서는 30일 오후부터 일부 수출업체에 대해 은행들이 수출환어음 매입신청 규모 등을 파악하자 최소한 수출금융만은 곧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S상사 자금팀 관계자는 『거래 은행이 신용장 매입신청 건수와 금액을 통보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며칠 내에 기한부수출환어음(유전스, LC) 등을 사주지 않겠는가』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또 다른 S상사 관계자는 『정부가 대책을 양산하기보다 제대로 실행되도록 현장에서 감독해야 한다』며 정부 대책은 또다시 「탁상행정」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무협협회 관계자도 『은행 본점에서 신용장 매입을 독려해도 일선창구에서 거부하면 그만』이라고 불평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정부에서 외환까지도 지원해 준다고 했으므로 수출금융은 중소수출업체의 소액 수출환어음을 중심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의 은행에 대한 자금지원 약속이 언제 철회될지 알 수 없어 보수적인 대출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영업정지중인 종합금융사에 묶인 콜자금도 전액 지원하기로 해놓고 일부만 지원한 것에서 보듯 정부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입장. ▼연초 자금대란 없을까〓수출금융을 제외한 기업 대출창구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풀리지 않고 있다. A그룹 자금관계자는 『연말 들어 기업어음 할인이 완전히 막혀 회사채 발행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무조건 자금을 확보하는 게 급해 고금리는 문제삼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각 기업 자금담당자들은 지난 10, 11월 대기업들이 발행한 3개월짜리 어음이 내년초 만기가 되기 때문에 1월중 자금시장은 극도로 경색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 맞추기가 연말로 끝날 것으로 예상한 기업들이 단기 어음을 마구 발행했다가 최근 뒤늦게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것도 이같은 자금대란을 우려하기 때문. 대우경제연구소 김상환(金尙煥)연구위원은 『정부의 대책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금융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지만 한시적인 효과만 예상된다』며 『IMF체제 아래서 긴축은 곧 고금리와 기업의 무차별 부도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새해 자금시장을 걱정했다. 〈윤희상·박래정·이 진·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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