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건축? 사용자 눈으로 공간 설계를”

  • 동아일보

‘존엄하고…’ 펴낸 강미현 건축사
“계단 하나에도 인간의 마음 담아야
이 책은 제 입장서 일종의 반성문”

호주에서 다인실 숙소에 묵으며 건축 답사를 하는 강미현 건축사의 모습. 강미현 건축사 제공
호주에서 다인실 숙소에 묵으며 건축 답사를 하는 강미현 건축사의 모습. 강미현 건축사 제공
약 7년 전, 강미현 건축사(52)의 건축사사무소로 요양병원 설계 의뢰가 들어왔다. 문제는 위치였다. 병원 맞은편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요양병원 창문 너머로 장례식장이 그대로 보이는 자리. 강 건축사는 최소한의 가림막 설치를 제안했지만, 사업주는 비용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해당 설계를 포기했다.

적법하게 지어졌더라도,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초라하게 만드는 건축물이 있다. 강 건축사는 건축 현장에서 체감해온 이런 문제의식을 주거, 노동, 장애, 교육, 공존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풀어낸 책 ‘존엄하고 초라한’(흠영)을 최근 펴냈다. 12일 전화로 만난 그는 “이 책은 제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했다.

“건축, 특히 공공건축은 그 사회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설계돼요. 우리는 편안함보다는 면적이 크고 화려한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답답함도 있고, 미안함도 있어요.”

강 건축사의 문제의식은 장애인 주거복지 활동을 하며 더욱 또렷해졌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친구가 되면서 “설계 도면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일상의 불편함을 체감하게 됐다”고 한다.

“제가 ‘우리 맛집 가자’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누나, 나는 갈 수 있는 데가 맛집이야.’”

대표적인 예가 화장실이다. 현행 법규는 수동 휠체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큰 전동 휠체어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화장실임에도 현실에선 이용이 어렵다.

“그 친구는 사람을 만나러 가도 물도 안 마시고 음식도 잘 안 먹어요. 화장실이 불편하니까요.”

강 건축사는 요양병원 건축에 대해서도 “현실의 설계는 병실과 레크리에이션용 공동 공간을 배치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사람답게 살려면 그것만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

“가족이 왔을 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고, 친구들이 오갈 수 있어도 좋고요. 반대로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은 분들은 자기만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요. 실제 사용자의 입장에서 공간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원광대 건축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그는 후배 건축가들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건축을 한다고 하면 크고 거창한 걸 꿈꾸잖아요. 그런데 저는 정말 작은 것 하나, 예를 들면 도시의 계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건축이었으면 좋겠어요. 건축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건축사#요양병원#공공건축#장애인 주거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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