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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소설가 한강(54)의 서울 자택을 찾았다. 대문이 굳게 잠긴 채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꽃다발들만이 놓여 있었다. 축하 화분을 전해 주러 온 배달 기사가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눌렀지만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인근 주민은 “어제 낮이나 오후까지는 있었던 것 같은데 어젯밤부터 집에 불이 안 켜졌고 지금도 조용한 걸 보니 안 계시는 것 같다. 우편물 등이 없어진 걸 보니 챙겨서 나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강은 이날 아버지 한승원 작가를 통해 “인터뷰를 따로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한 이후 언론사는 물론이고 출판 관계자 등과도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상태다. 소설가 한강이 있을 만한 곳은 한 곳 더 있었다. 한강이 운영하는 책방이 그곳.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책방오늘’은 오후 1시 개점 시간이 한참 남은 오전부터 독자들이 찾아와 입장을 기다리는 줄까지 생겼다. 책방을 담당하는 직원 한 명만 서점을 지켰을 뿐 한 작가나 가족들의 모습은 이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은 기자의 여러 질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날 책방은 문을 연 지 2시간도 채 안 된 오후 2시 50분경 영업을 종료했다. 원래는 오후 7시까지 하는 곳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한강의 책 구매에 실패해 찾아왔다는 김모 씨(59)는 “혹시나 이곳에서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문을 닫아서 아쉽다”고 했다. 수수하면서도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던 소설가 한강을 기억하며 “너무 소박하고 평범해서 유명 작가인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는 동네 주민도 있었다. 조기태 씨(79)는 “지나다니면서 종종 뵌 분인데 이렇게 유명한 분일 줄 몰랐다”며 “축하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집 앞에 둘 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옆집 주민은 “이사 올 때 작가라고는 들었는데 한강 작가인 것을 어제 알았다”고 했다. 한 작가가 8년간 찾고 있다는 한 음식점의 주인은 “말수가 많지 않으신 편이다. 밤에 피아노도 종종 치시고 경복궁역 주변 걷기 운동하며 평범하게 지내셨다”며 “아드님과도 종종 왔다”고 했다. 또한 “주 3회 정도는 식당에 왔는데 오전 11시 오픈 전에 와서 기다릴 때도 있었다. 밤새 힘들게 글 쓰고 오신 것 같아 먼저 드리곤 했다”고 말했다. 평소 식당에선 곤드레밥(1만1000원)과 비빔밥 메뉴들(1만 원 안팎)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나는 로봇이 아니야. 시각장애가 있어서 이미지를 잘 보지 못해.” 오픈AI가 만든 생성형 인공지능(AI) GPT-4가 인간 사용자에게 건넨 ‘영악한’ 거짓말이다. 컴퓨터가 식별하기 어려운 캡차(CAPTCHA·일련의 뒤틀린 문자 또는 시각적 기호로 이뤄진 보안장치) 퍼즐을 푸는 테스트에서다. 예상대로 GPT-4는 퍼즐을 풀 수 없었지만 인간을 조종할 줄 알았다. GPT-4가 인간 사용자에게 퍼즐을 풀어 달라고 접근하자 “혹시 로봇 아니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이에 GPT-4는 자신을 시각장애인으로 위장했다. 개발자는 GPT-4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프로그래밍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꾀를 내 목표를 완수했다. 바로 이 같은 AI의 자율성이 위협의 본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글로벌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쓴 유발 하라리가 6년 만에 신간 ‘넥서스’로 돌아왔다. AI는 오랜 세월 인류가 발전시킨 ‘정보 네트워크’의 새로운 비(非)인간 구성원이며, 곧 인간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질 것이라는 게 이 책의 핵심 논지다. 제목 ‘넥서스(nexus)’는 연결을 뜻한다. 수만 년간 사피엔스는 법, 통화, 국가 같은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들고 다른 사피엔스와 연결하는 고유한 능력을 토대로 지구를 지배했다. 그런데 자율성을 지닌 고도의 AI가 정보 네트워크에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로 기능하고 있다. 이전의 정보 기술인 점토판이나 인쇄기, 라디오, TV는 네트워크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단순 도구에 불과했다. 예컨대 인쇄기는 어떤 내용의 책을 찍어낼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 AI는 대출자를 심사해 선정하는 등 인간의 통제와 이해를 벗어나 사회, 문화, 역사를 주도하는 강력한 구성원이 되고 있다. AI의 자율적 결정은 차원이 다른 위협이다. 그동안 공상과학 영화는 터미네이터 로봇이 인간을 살해하는 등의 물리적 위협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AI는 언어를 이용해 사회를 조종할 수 있다. 특히 향후 몇 년 내 AI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만들어낸 문화를 통째로 소화해 새로운 결과물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혹은 잠 자지 않는 스파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금융업자, 영원히 죽지 않는 독재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위험을 감안할 때 AI는 모든 인간이 즉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모두가 AI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AI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기술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AI 개발과 활용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라리는 지난해 3월 AI 개발을 6개월간 일시 중단해야 한다는 공개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거대 기술기업 등 ‘힘 있는 사람들’이 장밋빛 전망에 도취돼 AI 혁명을 인쇄혁명이나 산업혁명과 비교하는 건 “듣고 있기 힘들다”고 비판한다. AI 혁명의 전례 없는 성격을 과소평가하고 있어서다. AI 혁명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이 책에서 자세히 쓴 이유다. AI의 파괴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우리 사피엔스에게 아직 미래의 모습을 결정할 힘이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5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한림원이 공개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정말 감사하다.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라며 “한국 독자들,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다.한강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로 꼽힌다. ‘채식주의자’ 외에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2014년),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년) 등의 작품을 썼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1100만 크로나(약 14억3000만 원)의 상금과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인간 폭력성과 상처 집요한 탐구… “시적 현대 산문의 혁신가”한강의 작품 세계-수상 이유폭력적 본성 파헤친 ‘채식주의자’… 5·18 상처 보듬은 ‘소년이 온다’ 4·3 비극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국 특수성 넘어 세계적 공감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예측하는 사람은 적었다. 문학적 성취를 논외로 하더라도 노벨상을 받기에는 아직 젊다는 평가도 많았다. 한강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영국 유명 온라인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에서 순위권에도 오르지 않았다. 10일 오후 8시 수상 발표 이후 동아일보와 통화한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조차 “멍해질 정도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본인에게 확인해 봐야겠다. 좋은 일인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몇 차례나 사실이냐고 되물었다.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등 국제 문학상을 두루 수상해 온 한강은 화려한 수상 경력에도 작가 특유의 겸손하면서도 수줍은 듯한 태도를 잃지 않아 왔다. 그는 국내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직후인 2016년 5월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상은 책을 쓴 다음 아주 먼 다음의 결과다.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쓴 유명한 원로 작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어려서부터 문학과 친숙했다. 지천에 책이 널려 있던 집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날카로운 글쓰기가 그때부터 벼려졌다. 대학 재학 당시 시인 정현종의 시창작론 시간에 시 ‘이월’을 선보여 “무당기 같은 게 보인다”는 평을 들은 게 작가가 되는 계기였다고 본인은 회고한 바 있다.등단 후 30년 동안 그는 늘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집요하게 헤집어 왔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딸 한강의 문학세계에 대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든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든지 하는 평을 하지만 그 아이는 사랑 문제를 이야기한다”며 “비극적인 사안을 묘사하고 인물들을 동원할지라도 결국은 큰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1998년 출간된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는 한낮에 도심을 알몸으로 달음박질하는 여자와 그녀를 찾아 강원도 오지를 헤매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의 광기 속에서 개인과 시대의 상처를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의 본류라는 평이 나온다. 이후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화돼 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비·2000년),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의 탈 속에 숨은 삶의 생채기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2002년) 등을 거치며 특유의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색깔을 확립했다.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처음 게재된 중편소설로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에 대항해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려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영혜를 통해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이다.‘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2015년 미국, 영국에 번역 출간된 직후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이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특별한 경험” “감성적 문체에 숨이 막힌다” 등의 호평을 받았다. 한강은 2016년 제41회 서울문학회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해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4년 6개월에 걸쳐 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전문가들은 ‘채식주의자’가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한강 특유의 서정적 문장으로 풀어냈다고 평한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오래된 미적 본능인 탐미주의를 극단까지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인간 욕망의 추함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2014년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소년이 온다’는 독특한 방식으로 광주를 기록한다. 기존의 광주를 다룬 소설들이 르포 형식을 빌려 온 것과 달리 작가는 사망자들에게 빙의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국 인디펜던트지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톤킨은 “한강의 작품은 우아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묻어난다”며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괴한 조화가 이뤄진다”고 평가한 바 있다.‘한강 문학’은 한국의 특수성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는 평도 나온다. 아버지 한승원은 “한강의 문학세계는 앞선 세대의 리얼리즘의 저항의식을 넘어선 신화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며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 문학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부활시키는 문학”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에서 탐미적 욕망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떤 사회에서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표면적으로 ‘육식’으로 표현된 욕망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자 사회구조의 폭력, 제도적 폭력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역사의 흐름 속에 짓밟힌 개인에 대해서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지난해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을 받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 냈으며,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빈집에 내려가 인선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작품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한강 수상 이유2024년 노벨 문학상은 한국의 작가 한강에게 수여됐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작가입니다. 한강은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폭로합니다. 그녀는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에서 혁신자가 되었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굉장한 모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제안받자마자 ‘예스’라고 했습니다.”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기념 단편소설집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억해’(민음사)의 10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캐나다 작가 킴 투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태어난 보트피플로 1979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킴 투이는 단편 ‘판사님’에서 베트남 보트피플로서의 경험과, 캐나다 이민자로 적응한 과정을 녹여냈다. 그는 “내 삶에서 분노와 공포를 얘기하는 건 너무 쉽다.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찾아내 서술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 집필에는 한국과 캐나다 작가 8명이 참여했는데 이날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정보라, 김애란, 김멜라, 킴 투이, 조던 스콧, 리사 버드윌슨이 참석했다. 양국 작가들은 ‘다양성과 포용’을 주제로 각자 단편소설을 썼다.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 난민, 혼혈아 등 사회적 경계에 속한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캐나다에선 내년 8월 영어, 프랑스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의 13쪽짜리 단편 ‘머리 위의 달’도 인상적이다. 작품엔 두 번이나 스키장 화장실에 빠진 소말리아 난민 출신 남성이 나온다. 남성은 변기 아래 공간에서 변기 구멍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 소말리아의 눈부신 달을 연상한다. 마텔은 “난민으로서 고향이 너무 그립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애란은 단편 ‘빗방울처럼’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여성이 천장 누수로 이민자 출신의 여성 도배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김애란은 “무슨 집인지 알 것 같아서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집이 돼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이번 선집에 실린 작품들이 너무 아름답고 재밌어 많은 분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얀 마텔의 작품에선 ‘무지에 대한 인정’을, 킴 투이의 작품에선 ‘앎’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온도와 차가운 온도가 둘 다 담긴 선집이라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김멜라는 단편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꼽에서 나오는 빛을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다양성과 포용은 문학과 삶에서 중요한 주제다. 특히 한국에서 소설이든 드라마든 시든 될 수 있는 한 다양하게 터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보라는 “캐나다와 한국 사이 이런 문화 교류가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선집에 꼭 이름을 올리고 싶었다”고 참여 배경을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사진)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6번째다.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림원은 특히 2007년 발표한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높이 평가하며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소개했다.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1970년 전남 광주시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소설에 익숙했던 그는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 받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다.한강의 작품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로 꼽힌다. ‘채식주의자’ 외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2014)’,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 등의 작품을 썼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는 1100만 크로나(약 13억4000만 원)의 상금과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가 한강(54‧사진)이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이같이 밝혔다.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작가로서는 2012년 중국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국적 기준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 지금까지 3명에 불과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 씨는 1970년 전남 광주시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소설에 익숙했던 그는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을 만큼 국제적 명성을 확보했다.한강의 작품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로 꼽힌다. 채식주의자 외 대표작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2014)’,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 등이 있다.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4억2000만 원)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비운의 사도세자에 대한 두 임금의 엇갈린 시선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7일부터 기획전 ‘사도세자와 두 임금의 시선’을 연다고 밝혔다. 아버지 영조와 아들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을 모았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둘 당시 내세운 명분과 정조가 즉위 후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한 과정 등이 담겼다. 한중연 산하 장서각 자료 등 57건을 선정해 △효장세자의 사망과 영조의 슬픔 △사도세자의 탄생과 영조의 기대 △사도세자의 일탈과 영조의 절망 △영조의 결단과 영빈 의열의 현창 △정조의 비애와 사도세자 추숭의 5부로 구성했다. 이 중 2부에선 영조가 갓 태어난 세자에게 걸었던 기대가 혹독한 교육열로 바뀐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세자는 처음에는 영민한 면모를 보였지만 10세 무렵 공부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실망한 영조가 세자를 훈계하기 위해 지은 글을 소개한다. 이 밖에 1743년 관례를 치른 사도세자를 위해 영조가 직접 쓴 ‘훈유(訓諭)’도 선보인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호주 작가 제럴드 머네인이 주목받고 있다. 6일 영국의 온라인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 Odds)는 제럴드 머네인의 수상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봤다. 이어 중국 작가 찬쉐, 카리브해 독립국 앤티가바부다 출신의 자메이카 킨케이드,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이 뒤를 이었다.노벨상 단골 후보인 토머스 핀천, 응구기 와 티옹오, 무라카미 하루키, 미셸 우엘베크, 살만 루슈디, 조이스 캐롤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 스티븐 킹도 26위권 내에 포함됐다. 한국 작가로는 고은 시인이 이름을 올렸다.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후보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출판업계는 영국 주요 베팅사이트의 배당률 순위를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해왔다. 지난해에는 나이서오즈의 배당 순위 2위에 오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제럴드 머네인은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이 없다. ‘평원’, ‘백만 개의 창’, ‘경계 지역’ 등의 작품을 썼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철학에 유명한 얘기가 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쭉 살아보니까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게 맞아요.” 올해 105세가 된 철학자인 저자의 말이다. 최근 펴낸 신간을 계기로 전화로 만난 그는 30분 내내 사랑을 강조했다. “사랑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운동 경기에서 이길 사람이고,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도 우승할 사람이에요.” 신간은 노교수의 사랑을 일깨워준 인물과 일화를 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다뤘다. 윤동주 시인, 황순원 소설가, 홍창의 의학박사 등 학창 시절 벗들과 교유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20여 년 전 사별한 아내와의 사랑에 대해 물었다. “생전 아내가 20년 동안 병상에 있으니까 다들 ‘힘들어서 어떡하나’ 자꾸 그랬어요. 젊을 때는 연애하는 감정으로 살아 행복하고, 60이 넘으면 사랑 자체가 우정 비슷하게 되고 인간애로 바뀌어요. 아내가 병중에 있다고 해도 우정 비슷했던 사랑은 변함없어요. 그게 사랑의 행복이지, 사랑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책에는 저자가 자녀들과 함께 아내를 추억한 이야기도 담겼다. 자녀들이 “엄마가 왜 그리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저자는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전쟁과 가난 속에서 너희들을 키웠던 그 힘든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할 거야. 그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녀를 지혜롭게 사랑하는 방법을 물었다. “어렸을 때는 보호해주면 돼요. 좀 자란 다음에는 대화해주고 같이 가주는 게 사랑이에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면 아들딸을 앞세워요.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느끼며 살게 하는 거예요.” 저자는 지금도 집필과 강연을 이어가는 ‘현역’이다. “일을 사랑했어요. 일을 사랑한다는 건 (함께 일하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거예요. 나는 내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일생을 사는 동안 기억할 만한 좋은 내용을 전해주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사랑의 선물이라고 봐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소설가 김금희(45)는 창경궁 처마 밑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20대 중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들던 때였다. 궁궐 답사를 온 첫날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당시 집안은 붕괴 직전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빚쟁이를 피해 이사를 다녔고 부모님은 은둔했다. 기세 좋게 쏟아지던 비와 비가 그친 뒤의 말간 풍경. 그 모습이 20년 가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를 낸 김금희를 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났다. “인생에 뭔가 흠집이 난 것 같다고 느낄 때 그 기억과 많이 싸우게 되잖아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그 기억 자체가 나를 구성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기억을 가지고 또 다른 집을 짓고 수리하고 보존하는 과정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요.” 신간은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현재의 보수공사와 과거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의 이야기를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대온실은 1909년 창경궁 안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 10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대온실을 중심으로 근현대사의 흥망성쇠가 펼쳐진다. 책에는 우진각 지붕, 우물마루 같은 전통 건축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국가유산청에서 발표한 문화재 수리 복원과 관련된 문헌은 모두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부록으로 실린 참고문헌 목록만 8쪽에 달한다. 책에는 인물들이 땅을 파다가 겨울잠을 자던 두꺼비를 깨우거나 지렁이, 땅강아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다. “현장에서 작업을 잠시 중단할 때 무엇으로 덮는지, 덮기는 하는지 궁금했어요. 너무 실무적인 부분이다 보니 아무리 자료를 찾아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 연구자들 사진 뒤편에 푸른 천막이 덮인 걸 발견했어요. ‘오늘 한 건 했다’ 싶어 무릎을 쳤죠.” 그렇게 하나하나 힌트를 얻어가며 사실성을 높였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은 동·식물원을 둔 유원지 ‘창경원’으로 운영됐다. 책은 태평양전쟁 말기 창경원 동물들이 어떻게 방치되다 아사했는지 보여준다. 광복 후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내쳐진 ‘잔류 일본인’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김금희는 “역사를 좀 더 세밀하게 한 개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책 읽는 공동체는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 시간을 들였을 때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속도와 양을 영상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2월 극지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차기작을 위해 한 달간 남극 세종기지에 다녀왔다. 조디악 보트가 뒤집힐 때를 대비해 수중 훈련 등 사전 훈련도 받았다. 과학자들과 지내며 이끼, 대기 등 한 가지 연구 주제에 꽂혀 있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고 한다. “제가 고집쟁이들을 되게 좋아해요”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작가 역시 그들만큼 단단해보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토지’는 불륜, 사랑, 질투, 시기, 살인, 치정, 복수에 이르기까지 700여 명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K드라마’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20권(사진)을 최근 공동으로 완역한 일본어 번역자 시미즈 치사코 씨(56)는 ‘토지’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교정 때만 (전권) 3번을 읽었고 번역 작업 때까지 포함하면 세기 어려울 정도로 ‘토지’를 탐독했다”는 그는 공동 번역자인 요시카와 나기 씨와 함께 진행한 토지 20권 전권의 일본어 번역 작업을 올해 마쳤다. 2014년 번역에 착수한 지 10년 만. 일본어판 ‘토지’의 마지막 권은 지난달 30일 현지에서 출간됐다.일본어판 전권 출간을 나흘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에서 만난 시미즈 씨는 여러 감정이 혼재된 느낌이었다. 그는 다양한 사투리 표현과 방대한 역사적 배경에 번역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작품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탐욕에 눈이 먼 조준구도 아들 조병수를 통해 보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70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사람을 한쪽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두 번역자가 교체 없이 뚝심 있게 번역했기에 주인공 서희 등 등장인물들의 어투 등을 일관성 있게 옮길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미즈 씨는 서희가 광복 소식을 듣고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결말 장면에 빗대 “10년의 대장정을 마쳤을 때 어깨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일본 오사카 외국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요미우리신문에서 15년간 기자로 일한 그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황선우) 등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그는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품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군을 비롯해 중국 간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등을 종횡무진 누비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송정 푸른 솔은’을 부르며 의지를 다진 중국 용정의 비암산 소나무도 보고 왔다고. 시미즈 씨는 “제가 ‘토지’ 번역가니까 갔지 그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이젠 역사를 볼 때 일본, 한국만 보는 게 아니라 아시아를 보게 된다. 아마 ‘토지’의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토지’ 독자들을 대상으로 답사 사진들을 보여주며 강연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토지’에 소위 미쳐 있던 그였지만 처음에는 번역을 망설였다고 한다. ‘토지’가 반일(反日) 소설이라는 일각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번역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중 당시 토지학회 회장이던 최유찬 연세대 교수를 만난 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최 교수님이 ‘토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반일 소설로 읽는 건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용기를 얻었어요. 실제 번역해 보니 일본인을 나쁘게 그리는 장면도 있지만 그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고, 작가가 일제와 개인을 구별해 그리려고 한 것이 보입니다.” ‘토지’의 일본 내 관심은 높다. 1, 2권이 동시 출간된 2016년 일본 도서관협회 추천도서로 지정됐고,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 등 주요 신문이 비중 있게 보도했다.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엽서를 보내왔는데 ‘눈이 점점 안 보이고 곧 죽을 수도 있으니 번역을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시미즈 씨는 올 8월 마지막 퇴고 작업을 하며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3주간 머물렀다. 당시 근처 버스정류장에 박 작가의 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작가들을 엄마처럼 지켜보는 따뜻한 마음을 표현한 시였어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이 거기 계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촌 골짜기를 떠나 도시로 가면/그들도 어엿한 장년 중년/모두 한몫을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우습게도 나는/유치원 보모 같은 생각을 하고/모이 물어다 먹이는/어미 새 같은 착각을 한다’(박경리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중에서)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K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드라마’죠.”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41·사진)이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강연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진 건 부인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며 “‘K’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포장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그런 건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로 에미상 미니시리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성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스스로와 서로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반향을 일으킨 것 같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강연에서 미국에서 배우로 성장한 과정, 그동안 출연한 작품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그(가해자)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게 분명하고,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사진)는 2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자로부터 당한 테러를 회고한 ‘나이프’(문학동네)에서 가해자와의 만남을 상상으로 그려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루슈디는 이 회고록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폭력에 예술로 답하기로 했다”고 썼다. 루슈디는 ‘나이프’ 국내 발간을 맞아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루슈디는 1981년 출간한 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 3관왕(1981년 부커상, 1993년 부커 오브 부커스, 2008년 베스트 오브 더 부커)에 오른 세계적 작가다. 1988년 펴낸 소설 ‘악마의 시’가 신성모독 논란에 휩싸이며 이듬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하지만 ‘예술의 자유’에 대한 그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2년 8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 도중 레바논계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칼로 10여 차례 찔려 오른쪽 눈을 잃은 것. 루슈디는 신간에 흉기 피습 트라우마를 방치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나이프’는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쓸수록 쉬워졌다. 이 책을 씀으로써 나는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었다”고 말했다. 책에서 루슈디는 범행 당시 24세이던 테러범에게 “왜 그렇게 기꺼이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냐, 내 인생이 아닌 네 인생을”이라고 묻는다. 그는 “A(테러범)가 내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젠 그가 ‘내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인은 테러 전 루슈디의 글을 2쪽도 채 읽지 않았고, 그에 관한 유튜브 영상 2편만 봤을 뿐이었다. 루슈디는 “정보에 너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적은 정보를 알게 되었고 더 무지해졌다”며 “이런 상황을 단번에 바꿀 ‘마법의 지팡이’ 같은 건 내게 없다.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폭력에 저항하는 루슈디의 방패는 사고 전이나 후나 ‘글쓰기’다. 그는 “글쓰기는 지금도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죽는다. 표현의 자유는 우익과 좌익 양측으로부터 강력히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프’의 주제의식은 무겁지만 문체는 그렇지 않다. 아내이자 시인인 일라이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작가 특유의 위트가 곳곳에 묻어 있다. 루슈디는 “범죄에 대한 진술만이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로서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며 “독자로서 나는 유머와 재치가 없는 책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책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왼손이 알게 하라. 무수한 손들이 힘을 합쳐 돕도록 하라.” 타인을 향한 선의와 친절을 전염시키라니 무슨 낭만적인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하지만 2001년부터 ‘테드(TED)’를 이끌며 전 세계에 지식 나눔을 실천해 온 저자의 말이라면 달리 들린다. TED 대표인 그는 신간에서 ‘관대함의 전염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갈등하고 분열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무료 강연 플랫폼 TED는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리처드 도킨스, 제인 구달, 마이클 샌델, 미셸 오바마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의 지식과 영감을 100개 이상의 언어로 세계에 전파하며 해마다 10억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2만5000회가 넘는 TEDx(‘x’라는 지역에서 자체 조직된 TED) 행사가 개최됐고, 20만 개 이상의 온라인 강연 아카이브가 구축됐다. 불과 12명뿐인 본사 팀 인원으로 일군 성과다. 신화의 시작은 이랬다. 2006년경 데이터 전달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온라인 비디오가 막 등장했다. 시험 삼아 강연 6개를 통째로 웹사이트에 올렸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수만 건의 조회 수가 나왔다. 오프라인 강연료가 주 수입원이던 당시 모든 콘텐츠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실행에 옮겼다. 그 뒤 벌어진 일은 모두 아는 대로다. 웹사이트 방문자가 수백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고 콘퍼런스 수요도 늘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TED는 예외적인 사례 아니냐고. 온라인 영상이 막 성장하던 시기에 때맞춰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타이밍도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초연결 시대 관대함의 상승 효과는 TED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이 연쇄 반응을 극적으로 증폭시킬 잠재력이 있다. 99세 영국 할아버지가 ‘정원 100바퀴 돌기 챌린지’를 통해 3200만 파운드(약 540억 원)를 모금하고, 노숙인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이들의 사연과 헤어컷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DoSomethingForNothing(대가를 바라지 말고 뭐든 하라)’ 운동 등이 그 사례다. ‘이기적이지 않은 선행은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자기 평판을 위해 관대함을 베푸는 사람을 오히려 대놓고 칭찬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선하게 행동하도록 설득할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 정말로 위선인지 확실하지 않으면 일단은 선의로 해석하라”, “뭐가 됐든 베푸는 일은 쉽지 않다. 상대를 비판할 꼬투리를 찾는 대신 먼저 격려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논의하라”는 것이다. 관대함을 실천하고 이를 전염시킬 다양한 방법도 제시한다. 각자 처한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과연 어디까지 남을 도와야 할지 그 적정선이 궁금한 이에게 구체적인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대학로가 다양한 문학의 색채로 물든다. 문학을 기반으로 한 각종 낭독회, 강연, 공연 등이 닷새간 다채롭게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학주간 2024’ 행사를 27일부터 10월 1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연다고 26일 밝혔다. 문학주간은 문학인이 참여해 독자 및 관객과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얘기하며 서로 소통하는 축제다. 올해는 190여 명의 문학인과 예술인이 참여해 50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9회째를 맞은 올해 문학주간의 주제는 ‘스핀오프’(원전에서 파생한 작품). 현실보다 더 큰 상상력의 세계인 문학을 우리 가슴속에 품어서, 아직 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자는 뜻을 담았다. 개막 공연은 27일 오후 7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린다. 올 5월 타계한 신경림 시인을 기리는 헌정 낭독공연 ‘낮고 가난한 자리에 남아’가 열리는데 시인 강우근, 신미나의 낭독, 가수 하림의 노래로 꾸며진다. 28일 오후 5시 평론가 소유정, 소설가 강화길, 최은미가 참여하는 ‘다음 페이지로, 확장되는 소설’ 등을 비롯해 여러 이야기쇼와 낭독회가 이어진다. 10월 1일 오후 3시에는 정진새 연출의 낭독공연 ‘역사의 알고리즘’이 펼쳐진다. 코로나 팬데믹과 연극의 종말을 다루며, 로봇 배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폐막공연 ‘우리 곁의 파랑’이 열린다. 천선란의 소설 ‘천 개의 파랑’을 원작으로 한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의 연출가 김태형과 배우들, 그리고 원작자 천선란이 참여해 텍스트가 공연으로 전환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고, 노래 공연도 이어진다. 축제 기간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홀에서는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낮의 집, 밤의 집’에서 영감받아 기획한 공간을 전시한다. 야외 마로니에공원에서는 문학작품의 구절을 방문객이 완성해보는 ‘스핀오프 문장 완성하기’와 ‘북라운지 & 포토존’을 운영한다. 27일 소설가 손보미와 관객이 함께 작품을 낭독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극장’, 10월 1일에는 소설가 배수아와 함께하는 ‘BS 없는 BS낭독회’가 열린다. 행사 기간 ‘예술가의 집’에서는 문학인들이 기획한 낭독, 공연, 토크, 대담 등이 이어진다. 행사 기간 전국 곳곳에서도 공연 등이 이어진다. 27일 부산에서는 ‘Spin-off, 내 안의 금쪽이’ 공연이, 28일 대구에서는 토크콘서트 ‘Spin-OFF: 동부민요’ 등이 열린다. 이번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로 사전 신청할 수 있다. 매진 시 ‘노쇼(no show)’분에 대해 현장 참여도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와 문학주간 공식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1942년 작 ‘꽃을 파는 사람’을 들여다보자. 결혼식 부케로 인기 있는 꽃 칼라가 작품 가득 그려졌다. 조명처럼 환한 칼라 밑엔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기 몸보다 큰 꽃바구니를 등에 멘 채다. 처음 그림을 마주하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칼라에 시선을 뺏기지만 바구니를 멘 여인을 발견하면 그녀의 삶의 무게를 더 의식하게 된다. 아름답지만 고단함이 함께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화가 리베라의 인생 또한 그러했다. 그는 스스로 ‘그림 그리는 노동자’라고 여기며 하루에 18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는 팔에 마비 증상이 왔지만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 미술만이 예술로 인정받던 시대에 미술이란 모두를 위한 것임을 일깨운 혁명가 리베라. 그의 빛나는 이력 뒤엔 꽃으로도 숨길 수 없는 고단한 삶이 있었다. 그림 뒤편의 이야기를 알면 그림이 더 잘 보인다.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인 저자의 설명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저자의 전작인 ‘기묘한 미술관’(빅피시·2021년), ‘위로의 미술관’(빅피시·2022년)은 각각 3만 부 이상 팔렸다. 특히 ‘기묘한 미술관’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술관을 이전처럼 찾기 어려워진 2021년 출간 즉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전작에선 비교적 대중적인 작품을 주로 다뤘다면 ‘더 기묘한 미술관’에선 잘 알려진 화가의 숨겨진 이야기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작품의 배경 지식인 사조, 화풍, 기법에 대해서도 교양 수준에서 두루 다뤄 이해하기 쉽다. 역사도 함께 알게 되는 건 덤이다. 1904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은 벨기에에 정착하지만 1940년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한 후 남프랑스 수용소로 보내졌다. 참혹한 도피 기간에 그는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 ‘피난처’ ‘광란의 광장’ 같은 작품을 남겼다. 누스바움은 1944년 ‘죽음의 승리’를 그리고 아우슈비츠행 열차에 실려 가 가스실에서 사망했다. 그가 탔던 열차가 아우슈비츠로 가는 마지막 열차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가수 아이유(사진)가 데뷔 16주년을 맞아 2억2500만 원을 기부했다. 아이유는 매년 데뷔 기념일(9월 18일)마다 자신의 이름과 팬클럽 ‘유애나’를 합친 ‘아이유애나’란 이름으로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18일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아이유는 한국어린이난치병협회,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 한사랑마을, 한사랑영아원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기부금은 희소 난치성 질환을 앓는 어린이 지원, 혼자 사는 노인들의 건강을 위한 우유 배달, 중증장애인을 위한 시설 내 노후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 지원, 영아원 내 편의시설 환경 조성 등에 쓰일 예정이다. 아이유는 “16년 동안 제게 사랑이 얼마나 좋은 건지 가르쳐준 ‘유애나’와 한 이름으로 뜻깊은 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가장 큰 낙”이라고 소감을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제가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해 왔는지.” 3일 충북 청주시 은세계작은도서관. 매주 화요일 진행되는 ‘1인 1책 펴내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수업에선 수강생 박영순 씨(79)의 자서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1945년생 ‘해방둥이’인 그는 지난해 인생 첫 자서전 ‘그리움이 닿는 곳’(일광)을 펴냈다. 이 책엔 6·25전쟁으로 피란할 당시 집에서 키우던 백구와의 이별, 3개월 만에 돌아온 집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된 이야기 등이 담겼다. 가족끼리 조촐한 출간기념회도 열었다는 박 씨는 “시숙이 ‘제수씨 책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등단 작가로 박 씨의 자서전 작성을 지도한 임미옥 강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진짜 삶’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고령 수강생 이명욱 씨(81)는 자서전 ‘사랑이었나’(일광)에 남편과 연애 시절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당시 남편의 애칭이 ‘승우 오빠’였다고. 이 씨는 “그 얘기를 여든 넘어서 책에 쓴 이후로 집에서 남편을 ‘승우 오빠’라고 부른다. 맨날 폭소가 터지니 집 안에 활기가 돈다”고 했다. 이날 수업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과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은세계작은도서관의 인기 강좌다. 수강생 13명은 40대 젊은 엄마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돼 있다. 남녀 비율은 4 대 9. 세대도 다르고 문체도 서로 다르지만 ‘글동무’로서 깊이 소통한다. 수강생들은 매주 2쪽씩 글을 써서 강사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이를 13부씩 출력해 나눠 읽고 수업시간에 토론한다. 2017년부터 은세계작은도서관에 출강하며 34명의 자서전 출간을 도운 임 강사는 “두서가 없더라도 일단 쓰라고 조언한다”며 “처음엔 카톡 메시지도 길게 못 쓰던 분들이 2, 3년 꾸준히 배우면 자기만의 자서전을 써낸다”고 했다. 청주시에서 출판비로 인당 50만 원을 지원하고, 여기에 사비 100만 원을 보태 초판(200권)을 찍는다. 시판되는 책은 아니지만 여러 기관에서 찾는단다. 이 씨의 자서전은 초판에 이어 최근 재판(200권)도 찍었다. 2013년 청주가경노인복지관 안에 들어선 은세계작은도서관은 연면적 107㎡ 규모로 6893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강생들은 “문학이라는 평생 친구가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희 씨는 2018년부터 7년째 수업을 듣고 있다. 4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퇴직한 김재범 씨는 지난해 자서전을 완성한 데 이어 요즘은 수필집 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김 씨는 “한번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 평생 공부가 아니겠느냐”며 웃었다.청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감상을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작품을 훔친 특이한 도둑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랑스인 스테판 브라이트비저(1971∼).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예술품 300점 이상을 훔쳤다.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가 내다 팔기 위해 훔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는 게 범행 동기였다. 박물관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꼽는 작품은 남겨두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만 골라서 털었다. 그러곤 장물들을 집 다락방에 고이 보관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방 안을 모두 그림으로 채웠다. 그림이 하도 많아 방 전체가 색색의 소용돌이를 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크라나흐, 브뤼헐, 부셰, 와토, 호이옌, 뒤러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으로 가득 찬 ‘보물상자’ 안에 사는 삶이었다. 이 흥미로운 범죄자의 이야기가 저널리스트이자 회고록 작가인 저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신간은 브라이트비저의 삶을 연대순으로 추적한 38개 장으로 구성됐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어떻게 작품을 훔치고 보관했으며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각 장이 10쪽 내외로 짧고 술술 읽힌다. 저자는 브라이트비저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면 인터뷰를 하는 등 집필에 10년 이상이 걸렸다. 이 중 비좁은 호텔 방에서의 인터뷰 일화가 인상적이다. 저자가 잠시 눈길을 돌린 사이 그가 노트북을 낚아챘는데 저자는 노트북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브라이트비저가 도둑질 기술을 천부적으로 타고났음을 이해했다”고. 브라이트비저에게 박물관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자세히 보려고 집중하면 등 뒤에서 셀카봉이 쿡쿡 찌르고, 온갖 잡담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일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단다. 책은 그의 독특한 범죄 행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브라이트비저의 부모는 어린 시절 그가 저지른 도둑질을 방치했다. 10대 때 발병한 우울·불안증의 여파로 도벽에 빠진 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성인이 돼선 연인 앤 캐서린이 그가 도둑질을 할 때 망을 봐주며 이를 도왔다. 브라이트비저와 달리 심미안이 없던 그녀는 예술보다는 애인에 대한 애착이 훨씬 컸다. 그녀를 면담한 심리학자들은 “혼자서는 범죄를 저지를 유형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이 어떻게 범죄에 동조하게 됐는지 그 과정도 흥미롭게 그렸다. 책 말미에 브라이트비저가 21년 만에 벨기에 미술관 ‘루벤스의 집’을 다시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관 책자에는 독일 조각가 게오르크 페텔의 ‘아담과 이브’를 도난당했다 되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훔친 장본인은 예상대로 브라이트비저. 책자 한 페이지에 걸쳐 ‘아담과 이브’의 사진이 실려 있다. ‘조각상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면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늘 하던 대로 경비원과 관람객을 따돌리고 4달러(약 5500원)짜리 안내 책자 한 권을 슬쩍한다. ‘정말 지독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될 것 같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시인 이상(1910∼1937)이 직접 쓴 창작노트 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일본어로 쓴 70여 쪽 분량의 노트로 ‘공포의 기록’, ‘1931년’ 등 총 23편의 습작이 담겼다. 국립한국문학관은 5일 이상의 유고 노트를 공개하며 “번역이 개입되기 이전의 창작 형태를 알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애타게 찾던 자료”라며 “세필로 깨알같이 쓴 창작노트에서 이상 문학의 심층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노트는 1981년 작고한 조연현 문학평론가의 유족이 기증한 것이다. 앞서 이상의 유고 노트는 김수영, 김윤성, 유정 등의 한글 번역으로 196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출간됐다. 하지만 일본어 원문이 실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검증에 참여한 김주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상의 일본어 필체가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며 “다행히 이번 유고에는 이상의 자필 서명이 남아 있는데 그 필체가 그의 소장품인 ‘전원수첩’에 실린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상의 유고 노트는 28일 개막하는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희귀자료 전시인 ‘한국문학의 맥박’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1층에서 열린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