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소중한 벗, 꿈엔들 어찌 잊으리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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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26〉친구를 떠나보낸 다음 날

영화 ‘남편들’에서 가까운 친구 스튜어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치, 거스, 해리(왼쪽부터)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동아일보DB
영화 ‘남편들’에서 가까운 친구 스튜어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치, 거스, 해리(왼쪽부터)가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동아일보DB
존 캐서베티즈 감독의 영화 ‘남편들’(1970년)에서 세 친구 해리, 거스, 아치는 절친했던 스튜어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며 깊은 상실감에 빠져든다. 해리는 이제 셋만 남아 쓸쓸하게 보인다고 하고 거스는 죽은 이를 그만 보내자고 되뇐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스튜어트가 남아 있다. 조선 중기 권필(權필·1569∼1612)과 이안눌(李安訥)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친구 구용(具容·1569∼1601)의 장례 다음 날 권필이 쓴 시다. 세 사람은 유달리 친분이 두텁고 서로 의기가 통했다. 시인과 구용은 왜란 중 강화를 주장하던 유성룡을 벌하라는 상소를 함께 올릴 만큼 신뢰하던 사이기도 했다. 믿음직한 구용의 모습을 시인은 바위 같다고 묘사했다.(‘存歿’ 2수 중 두 번째 수) 그런 구용이 세상을 등지자 시인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듯하다. 구용을 묻던 날 밤 시인은 꿈속에서 구용을 만났는데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고 썼다.(“是夜夢金化, 如平生.”) 간절한 그리움이 꿈속에서나마 친구를 만나는 일로 이어진 것이다.

구용에 대한 사모의 정은 이후에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인과 이안눌은 종종 구용의 꿈을 꿨고(‘夢具容’, ‘悼亡, 寄示李子敏’), 친구의 옛집 앞을 지나다 “덧없는 세상 십 년에 인간사 변해 가는데, 봄이 오니 부질없이 온 산에 꽃만 피었구나. 浮世十年人事變, 春來空發滿山花”(‘過城山具容故宅’)라고 서글퍼했다.

시는 동틀 무렵 눈물 훔치며 산을 나서는 시인을 꾀꼬리가 울며 전송하는 것으로 끝난다. 꾀꼬리는 여기서 친구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이다.(詩經 小雅 ‘伐木’에서 유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1960년)에서 주인공 마르첼로는 선망하던 친구 스타이너의 죽음 뒤 밤새 술에 취해 세상에 대한 환멸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맞이한 아침, 마르첼로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괴상한 물고기를 본다. 시인의 슬픔을 함께해 준 꾀꼬리처럼 물고기의 눈이 친구를 잃고 삶의 목표를 잃은 마르첼로를 구슬프게 응시한다.

이 시는 후일 임금에게까지 알려졌다. 선조는 이 시를 읽고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떠했길래 시어가 이다지도 슬프냐”고 물었다.(南龍翼의 ‘壺谷詩話’) 슬픔의 정도는 우정의 순도에 비례할 것이다. 친구를 떠나보냈지만 시인의 마음속엔 여전히 그 소중한 벗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시#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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