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 가득찬 6m 80cm ‘백두’… “스케일 큰 작품에 욕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4년 만에 개인전 ‘흔적 Trace’ 여는 권순철 화백
코로나 이후 프랑스서 귀국해 국내서 1000호짜리 대작 몰두
‘백두’‘한라’ 등 한국의 명산 표현
“복잡한 것들은 최대한 줄여… 산의 정수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권순철 화백이 최근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한 ‘백두’, 2020년, 캔버스에 오일, 284×680.5cm. 권 화백은 캔버스가 너무 커 작업실에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 작품을 전시장에 옮겨놓고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권순철 화백이 최근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한 ‘백두’, 2020년, 캔버스에 오일, 284×680.5cm. 권 화백은 캔버스가 너무 커 작업실에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 작품을 전시장에 옮겨놓고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권순철 화백(76)은 1989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귀국해 보낸 1년이 근래 고국에서 보낸 가장 긴 시간이다. 이 기간에 권 화백은 1000호짜리 대작들에 몰두했다. 그중 한 작품인 ‘백두’(284×680.5cm)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흔적 Trace’에서 볼 수 있다. 권 화백의 개인전은 2016년 대구미술관 전시 이후 4년 만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화백은 “체력이 버텨줄 때 큰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라면 대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적 작가들이 대규모 작품을 하는데, 한국에서도 스케일 큰 작품이 많이 나와야죠.”

권 화백은 대작 시리즈를 위해 프랑스에서 캔버스도 가져왔다. 그러나 작업 공간이 마땅치 않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화실을 정리하고 경기 고양시에 새 화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백두는 물론이고 ‘얼굴’ 같은 대작 여러 점을 작업하고 있다. 권 화백은 “작가로서 스스로의 생각이나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며 “한라산도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에 내놓은 ‘한라’는 4∼5년 작업한 작품입니다. 기존 작업실에서는 가로로 길게 펼칠 수 없어 한계가 있었는데, 한라산의 평평하고 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진 산이 한국에 많습니다. 화가에겐 조형적으로 행복한 일이죠.”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권순철 화백. 이번 개인전에는 권 화백이 1980년대 제작한 테라코타 작품도 약 40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권순철 화백. 이번 개인전에는 권 화백이 1980년대 제작한 테라코타 작품도 약 40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에게 산은 얼굴만큼 오래된 주제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기 전 서울 성북구 집에서 살 때는 캔버스를 들고 나가 수락산 도봉산 관악산을 현장에서 하루 종일 그리곤 했다. ‘쉬르 플라스’(sur place·현장에서)로 그리지 않은 그림은 생명력이 약하고 형상만 나온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침에 산을 가면 복잡한 기운이 돌아요. 그 후 점심, 저녁으로 가면 점점 해가 저물며 산의 색도 잦아들고 형상만 남죠. 저는 그것을 산의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가서도 이 이야기를 늘 했는데, 해가 완전히 지고 컴컴해지면 산의 바위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웅크린 사람 같은 모양이 되거든요.”

산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권 화백은 원(元)대 황공망(1269∼1354)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를 언급했다. “손으로 그린 것 같은 흔적이 없으면서 빈틈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만한 산의 정수(精髓)를 표현한 서양화가가 폴 세잔”이라고 덧붙였다.

‘정수’나 ‘본질’이란 말을 그는 자주 꺼냈다. 그림은 사람 손에서 시작하지만 작위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의 본질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도 너무 늦었다”며 “이제 복잡한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했다.

“파리에도 조그마하지만 그 나름의 사회가 있어 어른 노릇을 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은 줄이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작업에 전념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희망보다는 조급함이 앞선다”는 말에서 비로소 그가 자신과의 승부에 전념할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2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권순철 화백#흔적 trace#백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