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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김풍 “제 웹툰, 변기뚜껑 여는 느낌일 겁니다”

입력 2017-02-09 03:00업데이트 2021-01-2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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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의 역사’ 작가 김풍 인터뷰
김풍은 ‘찌질의 역사’ 시즌3의 여자 주인공 중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보미보다 꿈 없이 사는 가을이에게 더 마음이 간다고 했다. “저는 가을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엔 수많은 가을이가 있어요. 가을이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고 생각해요.”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학 입학, 군 제대 그리고 취업. 남자들은 보통 이 시기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한다. 한데 이게 ‘착각’임을 일깨우는 만화가 있다. 스무 살 청춘의 사랑과 성장을 그려낸 만화. 웹툰 ‘찌질의 역사’다.

“‘변기 뚜껑을 열어보는 느낌’이 드는 만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밑바닥 이야기를 할 땐 용기가 필요하죠. 제 과거를 들춰봐야 하니까요.”

‘설익은 수컷’의 연애담을 민망하도록 자세히 풀어낸 이는 자취 요리의 대가로도 알려진 만화가 김풍(본명 김정환·39)이다. 9일 완결(유료 보기 기준)을 앞둔 그를 1일 서울 마포구 와이랩미디어 사옥에서 만났다.

개명하려는 여자친구에게 전 여친 이름을 추천한 사실을 들켜 잔인하게 차인 주인공 민기의 모습. 다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민기는 이후 두 명의 여성을 더 사귄다. 와이랩미디어 제공
현(現) 여친 개명하는 데 전(前) 여친 이름 추천하기(그 결과 민기는 두 명의 ‘설하’와 사귀게 된다), 이별 후 명품 구두 사준 게 아까워 데이트 비용 손익계산 하기, 결정적 순간 ‘내가 처음이냐’고 물어보기…. 주인공 민기의 행동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적나라한 찌질함’ 그 자체다.

“사실 누구에게나 찌질의 역사는 있잖아요. 저 역시 30대 초반에 훅 몰락했거든요. 만화도 그리고 방송도 하고 사업도 벌였는데 이도저도 아니었어요.”

‘서른 즈음 김풍’은 “찌질한 흑역사 그 자체였다”고 고백한다. 당시 그는 ‘폐인가족’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지만 만화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다. 만화에만 오롯이 집중하지 못해서였다.

“만화 그릴 때도 ‘어떻게 하면 빨리 해치울까’ 생각만 했어요. 그러다가 동료 작가들이 만화로 승승장구하는 걸 보는데…. 그걸 용심이라고 하나요? 질투는 들끓으면서 노력하지 않는, 정체된 삶을 살았어요.”

그에게도 기회는 왔다. 2011년 만화 ‘슬램덩크’ ‘원피스’를 펴낸 일본 최대 출판사인 슈에이샤(集英社)로부터 월간 연재 제안을 받은 것. 하던 일은 모두 접고 콘티 짜는 데만 9개월을 매달렸다. 물귀신을 주제로 한 공포물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보냈을 때 일본에서 온 건, 고쳐야 할 점을 적은 A4용지 4장 분량의 편지였다.

“그 후로 몇 통의 편지를 더 받았어요. 스토리를 압축해서 보내 달라, 소재가 재미없으니 바꿔라, 한국적인 정서를 넣어 달라…. 원고를 보내고 수정 요청이 반복되는 지옥훈련을 2년쯤 했죠.”

일본 연재 건이 흐지부지될 무렵 그는 우연히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게 된다. 생기는 넘치지만 숫기는 없었던 스무 살 남자 대학생의 첫사랑 이야기였다.

“물귀신 생각만 하다가 그 영화를 보니 울컥하면서도 남자 입장에서 많이 미화된 영화라 생각했어요. 그토록 찌질했던 이제훈이 어떻게 근사한 엄태웅으로 변했는지가 안 나오잖아요. 비어 있는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찌질의 역사’는 시작됐다. 학교 후배인 만화가 심윤수가 그림을 맡고 그가 스토리를 짰다. “단편 독립영화 찍는다고 생각했어요. 다수는 아니고 소수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겠다 싶었죠. 제가 하고 싶은 걸 한 거였어요.”

오판이었다. ‘찌질의 역사’는 독립영화가 아닌 블록버스터가 됐다. 독자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목요일 웹툰 3, 4위권을 유지했다. 매 화 댓글은 5000여 개가 달리고 3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찌질의 역사’는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그런 작품 있잖아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보면 ‘그걸 보던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거요. ‘찌질의 역사’가 독자들에겐 그런 작품이었으면 합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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