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42>세이(洗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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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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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 씻을 세 耳: 귀 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고결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비유하는 말로 기산세이(箕山洗耳), 영수세이(潁水洗耳)라고도 한다. 진대(晉代)에 황보밀(黃甫謐)이 지은 ‘고사전(高士傳)’이라는 책의 ‘허유(許由)’ 편에 나오는 말이다. ‘고사전’은 청고한 선비들의 언행과 일화를 엮은 것이다.

허유의 자는 무중(武仲)으로 양성(陽城) 괴리(槐里) 사람이었다. 그는 사리가 분명해 한 치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선비였다. 허유의 성품을 높이 평가한 요 임금은 자신의 자리를 그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 임금은 사신을 보내 허유가 은거하고 있는 기산(箕山)에 찾아가게 했다.

그런데 허유는 제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임금이 그를 구주(九州)의 수장으로 삼으려 한다는 사자의 말을 듣자, 그는 ‘들으려 하지 않고 영수 가에서 귀를 씻었다(不欲聞之, 洗耳於潁水濱)’는 것이다. 때마침 그의 친구 소부(巢父)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이려다가 허유가 귀 씻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허유는 소부에게 “요 임금이 나를 불러 구주의 수장으로 삼으려 하기에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이런 연고로 귀를 씻고 있었네(堯欲召我爲九州長, 惡聞其聲, 是故洗耳)”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부는 한술 더 떠 시큰둥한 표정으로 허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가 만일 높은 언덕과 깊은 계곡에만 거처한다면 사람 다니는 길과는 통하지 않았을 테니 누가 자네를 볼 수 있었겠는가. 자네가 일부러 떠돌며 그 명예를 듣기를 구한 것이니, 내 송아지의 입을 더럽혔구려(子若處高岸深谷, 人道不通, 誰能見子. 子故浮游, 欲聞求其名譽, 汚吾犢口).” 그러고는 “자네가 그런 더러운 말을 듣고 귀를 씻었으니 이 물도 더러워졌을 것”이라면서 그런 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이(洗耳)’를 실행한 허유나, 그런 말을 들은 것 자체가 문제라고 호되게 지적한 소부의 절개와 지조는 정치의 계절인 오늘 이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고전#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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