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패션과 권력’ 쓴 박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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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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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게 보이려는 욕구… ‘옷차림의 권력’ 파고들었죠”

“흔히 세상을 움직이는 게 이념이나 사상 같은 거창한 것인 줄 알죠. 하지만 의외로 옷이나 장신구 같은 작은 것들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박종성 교수의 주장은 도발적이었다. 그동안 문화적 요소에 얽힌 정치사를 톺아보는 책들이 많았지만 그의 신간 ‘패션과 권력’(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은 이들과 다르다. ‘패션에도 정치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패션이 정치를 좌우한다’고 주장하기 때문.

‘패션과 권력’은 중세의 문장(紋章)과 깃발에서 현대의 빈티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패션의 요소들을 돌아본다. 책에서 박 교수는 인간이 패션을 만들지만 그 패션이 다시 인간의 권력을 만들고 지배와 복종 관계를 교착시킨다고 설명한다.

신간 ‘패션과 권력’을 낸 박종성 교수는 “패션은 헝겊과
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매개
하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박종성 교수 제공
신간 ‘패션과 권력’을 낸 박종성 교수는 “패션은 헝겊과 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매개 하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박종성 교수 제공
이렇게 패션을 이용한 힘, 보이는 것을 통한 세(勢)의 과시를 그는 ‘시선권력’이라고 부른다.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들의 시선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 때문에 예부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외양을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려 했다. 16, 17세기 유럽에서 널리 쓰인 거대한 옷깃 ‘러프(ruff)’가 대표적인 예다. 키가 작고 왜소한 데다 얼굴마저 작았던 엘리자베스 1세는 여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상체만 한 러프를 목에 둘렀다. 미동조차 어렵게 만드는 이 러프는 여왕의 모습을 거대하게 보이게 했고, 가만히 앉아 상대와 거리를 두고 도도한 모습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인 상징이었다.

“처음 이 책을 구상한 것도 케이트 블란쳇이 엘리자베스 1세로 열연한 2007년 영화 ‘골든 에이지’를 보고 나서였어요. 당시 나는 안식년을 앞두고 영화와 정치에 관한 책을 쓰려고 영국 유학을 계획 중이었는데, 영화 속 여왕을 보고 불현듯 ‘패션이 권력을 만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박 교수는 영국에서 낮에는 교환교수로 일하고 밤에는 런던패션칼리지를 다녔다.

그는 패션의 범위를 단지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에만 두지 않는다. 중세 가문의 문장 역시 갑옷, 깃발, 집안의 장식 등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시각적 훈육과 반복학습을 통해 그 가문의 권력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효율적인 시각권력이었다.

흔히 ‘여성에 대한 억압적 권력이 투영된 패션의 대표사례’로 일컬어지는 이슬람의 베일에 대해서도 색다른 주장을 편다. “이슬람 여성들의 수기를 보면 ‘남성들은 나를 볼 수 없는데 나는 그들을 볼 수 있다’고 쓴 내용들이 종종 나옵니다. 베일이 오히려 여성들로 하여금 열정적이고 독자적인 관찰을 가능하게 해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힘이 된 측면도 있었던 거죠.”

박 교수는 그동안 대다수 정치학자들이 주목하지 않는 포르노, 만화, 백정, 기생과 같은 독특한 소재에 담긴 정치학에 주목해 왔다. 그는 “본래 혁명을 공부했는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혁명보다는 미시적인 요소들의 종합이었습니다. 이에 역사를 좀 더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찾았죠”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는 이 같은 학제 간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정치학자들은 흔히 자신의 학문에 파묻히기 쉬운데, 비록 양쪽 학계에서 다 비난받을지언정 세계사에 관한 우리 이해의 폭과 질을 높일 수 있지 않겠어요?”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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