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 동아일보

‘마스크’전에 선보인 발레리 블랭의 사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변장한 인물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성곡미술관
‘마스크’전에 선보인 발레리 블랭의 사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변장한 인물을 보여준다. 사진 제공 성곡미술관
서울 성곡미술관 ‘마스크’전
가면 쓴듯 허상의 현실 보여줘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스크-가면을 쓴 사람들’전은 ‘사진은 현실을 재현한다’는 고정관념을 되돌아보게 한다. 현실세계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기록하는 것, 그 너머로 사진이 갖고 있는 표현적, 개념적, 창조적 힘을 보여주는 사진전이기 때문이다.

전시에서는 맨 레이, 브라사이, 다이앤 아버스, 신디 셔먼, 소피 칼 등 해외 작가부터 육명심 구본창 오형근 등 한국 작가까지 48명의 100여 점을 통해 사진의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엿볼 수 있다. 이들 사진은 마스크나 변장을 통해 실체를 감춘 얼굴과 표정을 통해 가면을 쓰고 있거나, 가면을 씌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프랑스의 사진 전문 큐레이터인 알랭 사야그 씨와 이수균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이 공동 기획한 전시로 강원 영월군 동강사진박물관에서 먼저 선보인 뒤 서울로 옮겨왔다.

‘예술은 현실세계의 복제가 아니다. 마스크는 허상이 되고 그 뒤에는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현실이 있다.’

전시장 입구에 쓰인 문구 그대로, ‘마스크’전은 사진이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전시 첫머리에는 여자로 변장한 마르셀 뒤샹을 찍은 맨 레이의 작품을 비롯해 사진 고유의 맛을 느끼게 하는 손바닥만 한 빈티지 프린트들이 자리해 100년 사진의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한다. 이어 인형으로 엽기적 장면을 연출한 신디 셔먼, 거짓으로 꾸민 텍스트와 이를 입증하는 사진을 곁들인 소피 칼,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분장한 모델을 찍은 발레리 블랭 등 현대 사진들이 펼쳐진다.

초기 사진이든 현대 사진이든 하나같이 애매한 현실, 거짓과 연출된 장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사야그 씨는 설명한다. “사진은 절대 진정한 리얼리티가 아니다. 다만 마스크를 쓴 현실일 뿐이다. 그래서 사진은 마스크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의 반영이 아닌, 진실을 감춘 허상과 가상적 이미지를 선보인 ‘마스크’전. 마스크를 통해 되레 마스크 뒤에 감춰진 진실을 주목하게 만든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02-737-765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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