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역사]<2>서울 종로구 장사동 세운상가

  • 입력 2009년 7월 15일 02시 59분


1979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서울 종로 세운상가. ‘인근 도로 신설 계획으로 인한 사유지 침범 논란’과 관련한 기사는 강남 개발로 입지를 잃어 가던 세운상가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9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서울 종로 세운상가. ‘인근 도로 신설 계획으로 인한 사유지 침범 논란’과 관련한 기사는 강남 개발로 입지를 잃어 가던 세운상가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사업으로 올해 5월 철거된 세운상가 종로 측 건물 터는 주춧돌 흔적만 남아 있는 잔디밭이 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사업으로 올해 5월 철거된 세운상가 종로 측 건물 터는 주춧돌 흔적만 남아 있는 잔디밭이 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의 기억 안고 사라질 ‘근대화의 외로운 섬’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자. 한눈에 들어오는 도심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종묘와 퇴계로를 남북으로 잇는 거대한 건축물 세운상가다. 1968년 완공된 개발시대 서울의 상징. 세운상가는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km에 이르는 구간에 기다랗게 늘어섰던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종로∼청계천 구간의 현대상가와 세운가동상가, 청계천∼을지로 구간의 청계와 대림상가, 을지로∼마른내길의 삼풍상가와 풍전호텔, 마른내길부터 퇴계로에 걸친 신성과 진양상가로 분할 건설한 것을 통칭 세운상가라 불렀다.》

건축물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건축의 실현 과정에는 구체적 개인의 이야기가 담기며,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 부른다. 세운상가의 역사에는 당시 35세의 야심만만한 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품었던 모더니즘 이상(理想)이 새겨져 있다. 그 흔적은 숨 가빴던 개발시대에 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남았다.

● 불도저 市長과 천재 건축가의 만남
김현옥 시장 “판자촌 재개발”
김수근 ‘도시 속 작은 도시’ 야심
1968년 국내 첫 주상복합 탄생

김수근은 단지 안에 초등학교와 파출소 등을 보유한 ‘도시 속 작은 도시’를 계획했다. 3층의 돌출 데크는 보행자 이동로를 자동차와 분리하려 한 장치였다. 하지만 여러 민간 시공업체의 작업이 따로따로 진행되면서 근린생활시설이 누락되고 각 데크가 건물 전체로 연결되지 않아 그의 이상은 계획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1970년대 말 강남 개발로 인해 도심 주거단지의 입지가 약해진 세운상가는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발전에 힘입어 서울 최대의 종합 가전제품상가로 발돋움했다. 한때 이곳은 3000여 업체에 2만여 명의 고용인구가 꿈틀거렸던 거대한 도시생명체였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 씨는 서울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은 건축물로 세운상가를 꼽았다. ‘탱크도 조립한다’던 우스개에는 복합적 생산 네트워크를 가진 지역경제 생태계였던 세운상가의 당시 위상이 반영됐다. 하지만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만들어진 뒤 세운상가는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세운상가의 뼈대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다. 이곳은 공습 때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로에서 필동까지 50m 폭으로 길게 비워 뒀던 지역.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무허가 판자촌이 들어섰다. 1966년 부임해 ‘근대화 불도저’를 자처한 고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곳을 재개발해 도시의 새로운 상징으로 만들려 했다. 시장의 개발 의지와 건축가의 이상이 만나 무허가 판자촌을 헐어내고 세운상가라는 거대 건축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2008년 12월 17일 세운상가 앞에서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사업의 1단계 착공식이 열렸다. 40여 년의 역사가 쌓였던 건물의 종로 쪽 일부가 올해 5월 우선 철거됐다. 세운상가는 2015년까지 완전 철거될 예정이다.

● ‘개발시대의 상징’ 역사 속으로
80년대 전자메카로 전성기
용산상가 조성 뒤 몰락의 길로
녹지축 사업에 2015년 완전철거

이달 초 재개발을 마친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Highline)’ 화물고가철도의 모습은 서울과 대조적이다. 이곳은 못쓰게 된 철도 위에 공원 등 보행자 편의시설을 꾸며 화제가 되고 있다. 청계고가도로를 보행자 전용의 하늘공원으로 만들어 청계천과 함께 즐기게 했다면 녹색도시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되지 않았을까. 세운상가의 흔적도 현재의 서울 시민이 필요로 하는 생태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전면 철거한 뒤 백지 상태에서 도시의 역사를 새로 쓰는 방식에서 이제는 조금씩 벗어날 필요가 있다.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 조성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세운상가가 지닌 근대 서울의 역사적 가치를 반드시 송두리째 뽑아 버려야만 할까. 그렇게 애써 조성한 녹지축 주변으로 남산의 경관을 가리게 될 초고층 건물군을 조성한다면 세운상가 철거는 더욱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서울은 기억과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거대 도시다. 시간의 자취를 지우고 매번 다시 쓰는 도시는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갖지 못한다. 도시의 정체성은 그 도시가 어떤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철거를 앞둔 세운상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낡고 오래된 도시의 역사성을 새롭게 살려 내는 ‘공간적 관용’을 가져볼 때가 됐다.

이영범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3회는 김광수 이화여대 교수의 ‘서울 여의도공원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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