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2년 ‘에비타’ 에바 페론 사망

  • 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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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진실로 나는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나에게서 멀리 떠나지 마세요. 재산이나 명예에 나는 욕심을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런 것들을 열망할지 몰라도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기에….”

우리에게 영화와 뮤지컬 등으로 잘 알려진 노래 ‘아르헨티나여, 울지 마오(Don't Cry For Me Argentina)’의 가사 중 일부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에비타’로 알려진 에바 페론(본명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1919년 5월 7일 아르헨티나 팜파스의 대지주였던 아버지와 그의 가정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가난이 싫었던 에바는 14세 때 영화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영화계에 도전했지만 단역과 조연 생활을 했을 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국 성우로 일하던 중 일생일대의 대전환을 맞는다. 1944년 지진 희생자를 위한 모금행사에서 후안 도밍고 페론 대령을 만난 것.

후안 대령은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5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고 에바는 대통령 부인의 자리에 오른다.

불우했던 과거를 잊지 않았던 에바는 사회 빈곤층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회개혁프로그램을 만들어 빈민과 노동조합의 문제를 해결했다. 여성의 투표권을 관철시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재단을 통해 학교와 병원, 보육원을 세웠다. 노동자와 빈민들은 그를 ‘성녀(聖女)’처럼 떠받들었다.

그 한편으로 에바에 대한 악평도 뒤따랐다.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대중주의) 때문에 나라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대통령의 독재정치를 이어 나가기 위한 안전장치였다는 것이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에바의 자서전을 교재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자신이 부통령 선거에 나갈 계획을 세우다 군부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에바는 1952년 자궁암과 척수백혈병으로 쓰러졌다. 결국 그해 7월 26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했다.

에바는 지금도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퍼스트레이디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 이유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에 있다. 낮은 사랑은 그 울림도 크기 마련이다. 물론 그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와는 별도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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