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손정숙씨, 1883∼1905년 美공사 11명 분석

입력 2005-12-06 03:01수정 2009-09-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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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여고 교사가 1882년 한미수호조약 체결 때부터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길 때까지의 한미 초기 외교사(1883∼1905년) 22년 동안 주한 미국공사(公使)를 지낸 11명을 분석한 책을 냈다.

주인공은 ‘한국 근대 주한 미국공사 연구’(한국사학)를 펴낸 진선여고 손정숙(36·여) 교사.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손 교사는 지난해 이화여대 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가다듬어 낸 이 책에서 이 시기 주한 미국공사를 추적하면서 특히 중요 역할을 했던 루셔스 H 푸트, 조지 클레이튼 포크, 존 M B 실, 호러스 N 알렌 등 4명을 집중분석했다.

“한국에서 친미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별도로 주한 공사들의 개인적 역할이 컸습니다. 그들은 워싱턴의 공식 외교정책과 상관없이 본인들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십분 활용해 한국을 도와주는 나라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미국공사 11명 중에서 정식 외교관 훈련을 받은 사람은 주중공사 서기관으로 약 4개월간 임시공사 역할을 맡았던 W W 락힐과 1905년 주한공사관 철수 업무를 맡았던 에드윈 V 모건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29세에 임시대리공사를 맡았던 포크처럼 외교적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거나 미시간 주 교육행정가로 평생을 보내다 63세의 나이로 부임한 실처럼 은퇴를 앞둔 이들이었다.

이는 당시 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얼마나 무관심했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본국 정부의 무관심이 오히려 미국공사들의 재량권 확대를 낳았고, 미국의 이익 확대를 위한 이들의 열정이 한국의 친미 성향을 낳게 했다는 것이 손 교사의 분석이다.

“초대공사 푸트는 고종이 미국을 ‘큰형(elder brother)’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 초석을 닦았고, 해군 무관 출신으로 임시공사를 맡았던 포크는 고종의 반청(反淸) 자주사상을 적극 지원하다 소환당할 만큼 한국에 애정을 쏟았습니다. 실 공사는 원래 친일적 인사였지만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을 지켜보면서 주한 외교관들의 수장으로서 일본의 침략 야욕을 저지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선교사 출신으로 한국에서 보낸 22년 중 공사 임기가 모두 합쳐 7년 8개월에 이른 알렌은 한국을 가장 잘 알았던 만큼 미국에 가장 많은 경제적 수익을 안겨준 인사입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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