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영훈]박물관 유물들에 말을 걸어 보세요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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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에서 개관한 지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30만 명에 이른다. 찾아준 분들께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을 드린 점은 없는지 두렵다. 미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할 것을 약속드리며 박물관 관람에 필요한 몇 가지 조언을 드린다.

아시다시피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 뒤에 사람이 숨어 있다. 유물 하나하나는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그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면 대화가 시작된다. 아, 이걸 그 옛날에 누가 만들었을까. 누가 쓰던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을까. 엄마가 이렇게 큰 토기를 만들 때 아이는 옆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사람이 죽었을 때 얼마나 슬퍼했을까. 왜 옛날 사람들은 무덤에 많은 물건을 함께 넣었을까. 저 돌도끼로 정말 나무를 베었을까. 저렇게 무거워 보이는 금귀고리를 어떻게 귀에 달았을까. 청자에 베풀어진 무늬는 무슨 뜻일까. 그래, 저때 이미 벼농사를 지었구나.

이처럼 문화재와의 만남을 통해 그 속에 들어 있는 수천 년 전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깨닫는 공간. 당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공간. 반가사유상을 보며 반가의 자세로 함께 명상하는 공간. 차가운 철로 저리 따뜻한 표정의 철불을 빚은 당시 장인들의 고뇌를 읽어 내는 슬기가 넘치는 공간. 아름다움에 대한 단순한 찬탄보다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정신을 꿰뚫어보는 공간. 요컨대 옛사람과 공감하는 공간.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문화공간이 아니겠는가. 문화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룩한 것이기에. 박물관이야말로 오래된 것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는 ‘오래된 미래’ 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공간임을 생각하며 관람했으면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관람 동선(動線)이 4km가 넘는다. 어림 잡아도 관람시간이 11시간 이상 걸린다. 하루에 다 볼 수 없다. 따라서 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go.kr)를 미리 방문해 관람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예컨대 오늘은 회화실이나 서예실을 중점적으로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박물관 피로(museum fatigue)’라는 말도 있듯이 두세 시간 이상의 관람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 다음부터는 건성으로 보게 되어 마음에 남는 것이 없다. 피곤해지면 과감히 관람을 포기하고 박물관 안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거나 미르폭포와 어우러진 석조물 정원을 산책하는 것을 추천한다. 과식하면 체하는 법.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박물관에는 화상안내기와 음성안내기가 준비되어 있다. 특히 화상안내기에는 명품 100선 등 다양한 동선이 제시되어 있어 주요 전시품을 관람하는 데 효율적이다. 다만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

가이드북인 해설도록을 사서 보는 것도 추천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국립박물관 전시실에서 도록을 갖고 해당 전시품을 관람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 이런 문화가 아쉽다. 전시품에 대한 가장 풍부한 정보는 바로 도록 안에 있다.

전시실에서 사진 찍는 것을 볼 수 있다. 플래시를 사용한 촬영은 금지돼 있다. 이는 또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한다. 이건 문화를 나누는 자세가 아니다. 설혹 플래시가 없는 촬영이라 해도 감상하는 데 사진기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사진은 허상일 뿐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실상이다.

물론 박물관을 관람하는 데는 왕도가 없다. 나만의 방법으로 스스로 보고 느끼면 될 터이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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