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시인 열한번째 시집 ‘우리나라의 숲과 새들’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4분


코멘트
송수권(65·사진) 씨는 올해 데뷔 30년을 맞는 대표적 중진 시인이다. 그가 열한 번째 시집인 ‘우리나라의 숲과 새들’을 고요아침 출판사에서 펴냈다. 그의 시 세계는 선배 시인인 미당(未堂) 서정주와 시적인 혈연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 ‘생명’ ‘민속’ ‘불교’라는 열쇠말이 공통적으로 깃들어 있는 것이다. 송 씨의 이번 시집에는 그 같은 열쇠말들이 담긴 시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그의 30년 시 세계를 두루 보여준다. 거기에 은근하고 너그러운 남성적 목소리가 더해졌다.

조팝나무 흰 꽃들을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처럼 내려다 보면서 쓴 시를 보면 그런 분위기가 얼른 와 닿는다.

‘조팝나무 가지 꽃들 속에는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떠드는 소리가 들린다/자치기를 하는지 사방치기를 하는지/온통 즐거움의 소리들이다/그것도 볼따구니에 정신없이 밥풀을 쥐어발라서/머리에 송송 도장버짐이 찍힌 놈들이다.’ (‘조팝나무 가지 위의 흰 꽃들’ 일부)

스님들이 계를 받고 난 뒤에 팔뚝에 불을 놓아 문신처럼 떠낸 자국을 ‘연비(燃臂)’라 한다. 입적해 다비식장에 눕혀져 있는 스님의 ‘연비’를 보고 쓴 시 ‘연비’에는 불교와 자연이 하나로 만나는 광경이 담겨 있다.

‘그 흰 팔뚝에서 아롱진/연비 몇 방울이 생살로 타면서/얼음에 갇힌 꽃잎처럼 나의 감각을 흔들었다//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가 구름 되고 비가 되어/칠칠한 숲을 기르는 물이 되고 햇빛 되는 걸까/(중략)/눈보라 치는 섣달 겨울 어느 날, 그의 방문을 열다가/평상시와 다름없이 윗목에 놓인 매화분의 등그럭에서/빨간 꽃망울 몇 개가 벌고 있음을 보았다/뜨거운 연비 몇 방울이 바야흐로 겨울 하늘에서 녹아 흘러/꽃들은 피고 있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송 시인은 이번 시집에 특별히 ‘서문’을 써놓았는데 자신이 그간 열 권의 시집을 써 오면서 대(竹)의 정신, 황토의 정신, 뻘(개흙의 방언)의 정신이라는 세 가지 남도 정신을 쫓아 왔다는 내용을 담아 놓았다. 대가 솟지 않고, 황토가 보이지 않으며, 뻘물이 튀지 않는 삶은 맹랑하다는 것이다. 시 ‘우리나라 풀이름 외기’를 읽으면 그런 삶을 꿋꿋하게 살아온 민초들에 대한 그의 가득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조선총독부 식물도감을 펼치니/구황식의 풀들만도 백오십여 가지다/쌀 일천만 섬을 긁어가도 끄떡없는 민족이라고/그것이 고려인의 기질이라고/나까이가 서문에서 점잖게 게다짝을 끌고 나온다/(중략)/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센인바리(千人針)를 받으러/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았듯이/나 또한 이 나라 산천을 떠돌며/어린것의 식물 표본을 도와주고 싶다/쇠똥가리풀/진드기풀/말똥가리풀/여우각시풀.’

‘센인바리’는 일제강점기에 어머니나 누이가 마을을 돌며 베에 천 개의 바늘땀을 받아다 징병 가는 이의 무운을 빌며 건네주던 풍습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