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38>오만과 몽상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코멘트
박완서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문제들에 부닥치게 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해 주는 훌륭한 작가다. 그녀의 작품 ‘오만과 몽상’은 욕망과 이상의 변주곡 속에서 사람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교양적 측면이 강렬한 작품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읽어 보면 주인공과 그 밖의 인물들이 빚어내는 잡다한 세류와 세풍을 냉정하게 묘사해 나가면서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묻는 차가운 이성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들이 빚어내는 비속한 장면들, 알게 모르게 박두해 오는 파국,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찾아오는 참담한 깨달음을 용서 없이 전개해 나간다. 그가 바로 작가인 발자크요, 스탕달이요, 플로베르다. 그리고 박완서가 바로 그러하다.

‘오만과 몽상’은 역설적이고 상징적인 한국적 상황을 배경 삼아 두 사람의 인생을 그려 나간다. 두 남자가 있다. 현은 부잣집 막내아들, 남상은 가난한 집 장손이다. 현은 친일파의 후예, 남상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그들의 꿈은 몽상적이다. 처음에 현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한 반면 남상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린 그들의 꿈은 세상의 거센 풍랑에 휩쓸려 난파당한다. 그들은 그들이 타고난 운명의 힘에 사로잡혀 버린다. 깨어져 나간 몽상의 잔해 위로 잔인한 현실의 법칙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은 부조리하다. 몰인정하고 인색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상을 포기한 순간, 세상에 적응하기로 결심한 순간 두 사람은 아름다운 젊음을 잃어버린다. 추악한 현실의 동조자로 귀착되고 만다. 그들의 운명은 현실적이다. 현은 물질로부터 자유롭지만 정신적으로 파멸한 존재가 된다. 남상은 물질적인 부를 얻고자 몸부림치지만 끝내 파멸에 봉착하고 만다.

‘오만과 몽상’은 두 사람을 통해 인간의 굴레를 드러내 보이고 인간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심문해 보여 준 소설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고전적인 작가들이 보여 준 인간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한국적인 바탕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자라는 여인이 있다. 현에게 버림받고 남상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다 죽음을 맞게 되는 이 여인의 존재는 독자들에게 삼각관계라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구성적 흥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이 여인은 겉으로 드러나는 뺏고 뺏기는 치정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꿈을 꾸면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이어 주는 감춰진 끈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치 이창동의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순임이라는 여자처럼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남자들의 타락한 영혼을 대속(代贖)하는 희생제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여인은 채만식의 ‘탁류’에 나오는 비극적인 여인 초봉이나, 죽음으로써 아비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심청전’의 심청으로 통한다. ‘오만과 몽상’은 우리의 고전적인 작품들에 나타나는 희생제의의 의미를 새롭게 상기할 수 있게 해 주는 새로운 고전이라고 할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