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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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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누적된 연구 성과가 객관적 보편적 시각으로 빠뜨림 없이 망라돼 소화, 정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사학자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崔淳雨·1916∼1984)는 65세 때인 1980년 틈틈이 발표한 짧은 에세이를 모아 장르별로 나눠 ‘한국미 한국의 마음’을 펴냈다.
이를 교과서로 지칭함은 결코 폄훼가 아닌, 우리 모두의 필독서란 의미이다. 전문적인 논문이나 체계적인 논술은 아니나 때론 그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전문학자들에게도 여러 측면에서 두루 시사함이 크다.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이 쉽도록 상태가 양호한 도판을 한쪽에 과감하게 한 점씩 실은 이 아름다운 책은 조기에 절판된 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2년 ‘최순우 전집’을 간행한 출판사 학고재에서 1994년 저자의 10주기를 맞아 순서에 변화를 주고 내용을 세분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비록 흑백이지만 삼국시대 토기부터 조선 말 회화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 전반에 대한 친절한 입문서이며 안내서이다. ‘한국미의 산책’에서 ‘흔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20개의 주제(보급판은 17개 주제)로 나누어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등 우리 전통미술 전반에 관한 이야기의 타래를 풀어 나갔다.
그러나 무미(無味)한 인문학의 개설서나 그야말로 딱딱한 교과서와는 다르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표현대로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미문(美文)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추구, 아름다움을 보고 깊이 느끼고 사랑했던 저자. 미술사학자로서의 그의 생활은 한국미의 추구와 실천 그 자체였다.
이 책을 들고 첫 쪽을 펴면 그냥 빨려 들어가 좀처럼 놓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는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 책은 겨레와 전통문화에 강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미술사가나 미학자 내지 평론가의 존재는 그들이 느끼고 깨달은 아름다움의 내용과 핵심 그리고 본질을 일반인에게 이해시키고 인식시킴에 있다. 즉 조형 언어에 낯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문자로 통역해 주는 역할이 그들의 임무이다.
‘한국 미술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유섭(高裕燮·1905∼1944)이 1934년 서른의 나이로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타계하기 전해인 1943년 최순우는 박물관에 입사한다.
이는 박물관의 법통(法統)을 전수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박물관 한곳에서 41년 동안 한 우물을 판 박물관인은 전무하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천부적인 안목과 혜안을 지닌 저자는 수많은 문화유산을 실제 보고 만지며 아름다움의 본질을 온몸으로 체득(體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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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터져 나온 사자후(獅子吼)이기에 독자의 가슴에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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