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1965년 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되짚는 심포지엄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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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로마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회식 광경. 공의회란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 규율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기 위해 교황이 소집하는 회의다. 전 세계 2000여 명의 주교 신부 평신도 등이 참가한 이 공의회는 몇 차례 휴회를 하며 1965년 12월 7일까지 계속됐다. 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거의 100년 만에 열린 이 공의회는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사목헌장’ 등을 채택해 반포했다. 이 공의회가 이룩한 개방과 쇄신과 적응의 정신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교회의 삶에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한국교회사연구소
1962년 10월 로마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회식 광경. 공의회란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 규율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기 위해 교황이 소집하는 회의다. 전 세계 2000여 명의 주교 신부 평신도 등이 참가한 이 공의회는 몇 차례 휴회를 하며 1965년 12월 7일까지 계속됐다. 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거의 100년 만에 열린 이 공의회는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사목헌장’ 등을 채택해 반포했다. 이 공의회가 이룩한 개방과 쇄신과 적응의 정신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교회의 삶에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 천주교는 1960년 신자 수 45만 명(전체 인구 대비 1.8%), 신부 수 243명(외국인 포함)에서 2004년 신자 수 458만 명(인구 대비 9.4%), 신부 수 3553명(외국인 제외)으로 크게 성장했다.

교회사가들은 1962∼65년 바티칸에서 열렸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국 천주교의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신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올해 4월 교황 선출 다음 날의 첫 미사에서 종교 간의 화합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쇄신에 힘쓸 것이라고 강론한 바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은 흘러간 역사가 아니라 앞으로 가톨릭을 이끌고 갈 미래의 지침인 셈이다.》

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계기로 공의회가 한국 천주교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심포지엄이 마련됐다. 한국교회사연구소(02-756-1691)와 가톨릭대 신학대가 공동 주최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 천주교회’ 심포지엄이 24일 오후 1시 반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대강의실에서 열린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인 최석우 몬시뇰(명예 고위직 사제)이 기조 강연하는 것을 비롯해 △강인철 한신대 교수가 교회의 사회참여 △박희중(인천교구 성소국장) 신부가 교구의 최고권력 분배 △한홍순(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평신도의 역할 변화 △김종수(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전례의 토착화 △황종렬 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이 한국교회의 전통종교 이해 분야를 각각 맡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과 앞으로의 과제를 발표한다.

최 몬시뇰은 발표문에서 “아조르나멘토(현대화)와 교회 쇄신이란 공의회의 정신이 이뤄졌는지 점검해 볼 때”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공의회 직후인 1968년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평신도사도직협의회(평협)가 결성되는 등 평신도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고 평가했다. 이때 주교회의에서 ‘평신도의 날’을 제정해 평신도가 강론을 맡도록 했으며 일부 헌금을 평협 활동재원으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평협 활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돼 왔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평신도의 61%가 1개 이상의 평신도운동단체나 후원회에 가입해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박 신부는 예민한 사안인 교구장의 권력 문제를 거론했다. 박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기초단위가 되는 교구가 교구장 주교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구장의 독선은 교구 행정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고 있다”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권위사회에서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아래로부터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변하는 것이 불가피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교구장이 통치권을 교구청 사제평의회(사제들로 구성되는 회의체)와 참사회(사제평의회의 상임위원회)에 위임한다면 본연의 임무인 교도(교리전수)와 성화(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더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강 교수는 “공의회 이후 한국 천주교에서는 공의회에서 발표된 각종 문헌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움직임이 뜨겁게 일어났다”면서 이는 이후 사회참여와 교회쇄신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특히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의 구속사건(1974년 긴급조치 위반)을 계기로 공의회의 영향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며 “이후 사회참여 인사나 단체들은 공의회 문헌 중 인간의 기본권과 민중의 생활권 보장 및 교회의 정치참여를 강조한 ‘사목헌장’을 가장 많이 인용했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앞으로도 공의회 정신이 재발견, 재강조됨으로써 교회쇄신운동이 급격히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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