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無慾의 가을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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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앞으로만 치닫는 세상 속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워하는가. 젊어서 가졌던 미래에 대한 꿈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유지하기에도 힘겨운 모습들이다. 모두가 앞으로만 내닫는 현실 속에서 내가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의 여유조차 없다. 모두가 맡은 일정과 그에 따라붙는 속도에 대해 강박증을 갖는다.

‘한국인은 바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는 한 문화심리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란 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한다.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는 소로가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13년 동안 보낸 편지 내용이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 동안 자연주의자로서의 삶을 실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시작된 두 사람의 편지 왕래는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신의 불안한 영혼을 토로하며 영악한 문명에 지치고 세속적인 삶에 환멸을 느껴 순수한 삶을 살기 위한 조언을 부탁하는 블레이크에게 그는 빛나는 태양 아래서 시야는 넓게, 문제는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권한다.

느릿느릿 산책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던 소로는 삶은 짧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고, 그러니 바로 지금 영혼을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처럼 묵직하고 물처럼 맑은 소로의 재능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무욕(無慾)한 존재들만이 친구가 되었으며, 욕심으로 어두워지지 않았기에 마음 밖의 자연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가을이다. 어김없이 하나님께서는 여름 후에 가을을 허락하시고 온 세상을 점차 풍요롭게 하신다. 또한 추석이라는 명절이 있기에 풍성함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과 사회의 불균형이 우리를 억누른다고 해도, 곡식을 여물게 하는 가을 햇볕 아래에서 조바심 내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시야는 넓게, 문제는 단순하게 생각하여 우리의 삶도 뭔가를 풍성하게 거두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김정석 서울 광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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