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전쟁]
중동 유탄… 코스피 ‘검은 화요일’
842개 종목 하락, 상승 84개 그쳐… 20만 전자-100만 닉스도 무너져
이란전쟁 장기화 여부에 방향 달려
“K칩 실적 탄탄… 단기 조정” 진단도
3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종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중동 전쟁 여파로 사상 최대 폭(452.22포인트)으로 하락하며 5,800 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3일 국내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며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을 나타낸 건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덮쳤기 때문이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됐고, 단기간에 가파르게 오른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조1731억 원, 8895억 원어치 순매도에 나선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국내 금융시장 향방이 중동 리스크 지속 기간에 달렸다고 본다. 조기에 마무리되면 빨리 안정을 되찾겠지만,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가 문제다. 유가 폭등, 글로벌 긴축 기조로 박스권에 머물렀던 수년 전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 “중동 의존도 높은 한일이 더 취약”
이날 코스피 하락률(―7.24%)이 2000년 이후 10번째로 클 정도로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데에는 외국인의 패닉 셀(공포에 따른 투매)이 크게 작용했다.
오전만 해도 코스피는 전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의 소폭 상승, 미국 뉴욕 증시의 반등, 코스닥지수의 상승 전환 등의 영향으로 낙폭이 작았다. 하지만 오후 들어 5조1000억 원에 달하는 외국인의 대량 매도세에 무너졌다. 이날 증시에서 상승한 종목은 방산, 정유 등 84개에 그친 반면, 하락 종목은 10배가 넘는 842개에 달했다.
코스피 낙폭은 다른 나라 증시와 비교해도 두드러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국내 에너지 생산이 제한적인 한국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원유 수입에서 중동산 비중이 70%에 달한다. 중동 의존도만 놓고 보면 일본(90%대)보다 낮지만, 내수 시장이 취약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대외 악재에 크게 흔들리기 쉽다.
인공지능(AI), 피지컬 AI 등의 수혜 기대감으로 최근 주가가 급격하게 올랐던 것도 외국인이 차익 실현에 나선 이유다. 반도체, 자동차, 전력기기 등 주력 제품 수출 환경이 갑작스럽게 나빠진 게 아닌데도 삼성전자(―9.88%), SK하이닉스(―11.5%), 현대차(―11.72%) 등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금 코스피는 가파르게 올라 현 주가 수준만으로 부담으로 작용하는 국면이었다”며 “과열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는 닷컴버블을 상회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중동 사태 장기화 시 경기 침체 우려
‘검은 화요일’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연초 대비 34%가량 상승하며 여전히 주요국 증시 중 상승률 1위다. 급락 후 반등을 기대하는 개인 투자자가 5조8000억 원어치 저가매수(순매수)에 나설 만큼 투자 대기 수요가 풍부하다. 개인투자자는 이날 주가지수 변동을 2배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4600억 원어치나 사들이기도 했다. 중동 불안이 단기에 그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스피가 워낙 단기간에 상승해 조정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던 차에 중동 전쟁이 터지면서 낙폭이 컸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 실적이 탄탄하기 때문에, 전쟁이 단기에 끝난다면 조정도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고, 미국 군사 작전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는 점은 악재다. 이럴 경우 당분간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상승 추세가 꺾일 가능성이 있다. 하나증권은 중동 리스크가 더욱 악화될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을 것으로 봤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스피의 최근 1년간 급격한 상승 과정에서 일부 거품도 낀 상황”이라며 “중동 전쟁으로 석유 가격이 올라 기업들의 지출이 늘어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위험 회피 심리, 그리고 외국인 중심의 차익 실현 매도세 등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과 금리가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상 징후 발생 시 ‘100조 원+알파(α) 시장 안정 프로그램 등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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