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터치 아프리카’미술관 운영하며 산문집 낸 정해종 시인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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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아프리카’ 미술관에 선 정해종 씨. “부시먼들이 원래 살던 칼라하리 사막의 절반이 국립공원이 돼버렸다. 착하고 어진 부시먼들이 점점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양=김미옥 기자
‘터치 아프리카’ 미술관에 선 정해종 씨. “부시먼들이 원래 살던 칼라하리 사막의 절반이 국립공원이 돼버렸다. 착하고 어진 부시먼들이 점점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양=김미옥 기자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시인 정해종(40) 씨는 몇 년 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 근처의 한 미술 작업장에서 조각가 제트로 진예카가 만든 ‘하루의 수확’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흑인 청년이 힘들여 낚은 물고기들을 품에 안고 행복에 겨워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는데 단순한 선, 우아한 율동감, 소박한 얼굴이 우리 화가 이중섭의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를 빼다 박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예카는 이중섭을 듣도 보도 못했다고 말했다.

“두 작품 다 문명 이전의 천진함을 갖고 있어요. 특히 ‘하루의 수확’에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 안분지족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씨가 확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아, 나는 이 길을 잘 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생기더군요.”

정 시인은 자신이 빠져든 아프리카 대륙과 미술에 대해 쓴 산문집 ‘터치 아프리카’(생각의 나무)를 최근 펴냈다. 자료로 접한 아프리카 미술에 매료돼 2000년 처음 현지로 찾아간 뒤 5년 만에 펴낸 책이다. 그간 그는 여덟 차례 아프리카로 가서 미술품들을 구해 왔고 2001년에 미술관 ‘터치 아프리카’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의 민마루동네 옥수수밭 옆에 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킴벌리 외곽 부시먼 예술가들의 농장까지 동서남북이 다 지평선인 광야를 밤낮으로 달리다 보면 불현듯 낙뢰 치는 구름 아래로도 지나게 돼요. 아프리카의 자연은 난폭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그들의 미술은 소탈하고 강렬하며 매력적입니다.”

이중섭의 그림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왼쪽)와 짐바브웨 조각가 제트로 진예카의 ‘하루의 수확’. 단순한 선, 우아한 율동감, 소박한 얼굴이 너무 닮았다. 수년 전 아프리카 여행에서 진예카의 조각을 발견한 정해종 씨는 “두 작품 다 문명 이전의 천진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그는 “아프리카 가운데서도 남아공과 짐바브웨를 많이 다녔다”며 “남아공에선 부시먼의 판화 예술이, 짐바브웨에선 쇼나 부족의 돌 조각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특히 부시먼은 철기시대를 거치지 않아 석기 시대 문명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요. 어린 열매는 따지 않고, 물 먹으러 나온 짐승은 잡지 않는 자연에 대한 존중과 소박한 삶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어요. 미술도 자연히 그런 마음을 담고 있고.”

정 씨는 “짐바브웨는 ‘돌로 만든 집’이라는 뜻”이라면서 “우선 조각할 돌을 찾아 먼 여행을 마다않고, 돌을 찾고 나면 그 돌이 스스로 원하는 모양을 깎을 수 있을 때까지 돌과 교감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들은 돌을 신성시해서 자를 때도 기계를 안 쓰고 톱을 써요. 달굴 때도 가스 불을 안 쓰고 모닥불을 피우지요. 그렇게 만든 것인데도 이상스러울 만큼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게 신기해요.”

그는 “올여름은 지난봄 가져온 조각들을 손보느라 더운 줄 모르고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손본다’는 건 운반할 때 난 흠을 지우거나 조각 받침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의 미술관에는 수십 점의 아프리카 조각이, 창고에는 500점도 넘는 조각이 놓여 있다.

정 시인은 그간 쇼나 부족 조각가 달링턴 치타테 씨를 데려와 일산의 집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요즘은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공부를 돕는 ‘나는 스쿨버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근처에 공동 미술작업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한다. 내년 5월까지 경기 파주시 헤이리로 미술관을 옮길 계획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 최근 몇 년간 제대로 시를 못 썼다. 그는 “아프리카로 건너가면 몇 달씩 있다 온다. 내가 성큼 커진 것만 같고, 사물의 이치가 금방 머리에 들어온다. ‘이렇게 좋은데 시가 또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웃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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