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제라르 뱅데]바캉스, 쥘 베른 책 갖고 떠나자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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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랑스는 특별한 작가의 사망 100주기를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작가, 바로 쥘 베른이다.

한동안 그는 청소년 대상 소설을 쓰는 작가로 알려졌다. 꿈과 모험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특히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문학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성인들에게도 폭넓게 읽히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쥘 베른이 소설을 통해 펼쳐 보이려 했던 야심은 산업사회 초기 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줄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미개척 지역이 널려 있던 시절, 그는 미지로의 여행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해저 2만리’(1869년)에서 네모 선장은 해저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기구(氣球)를 타고 5주일’(1863년)에서 작가는 하늘을 통해 우리를 아프리카의 미개척 지역으로 데려간다. ‘지구 중심으로의 여행’(1864년)에서는 우리가 사는 별의 심장부로 여행을 떠난다. ‘80일간의 세계일주’(1873년)에서 우리는 필리아스 포그와 함께 세계 여행에 나선다.

쥘 베른의 소설은 이런 지리상의 여행 외에 우리를 또 다른 여행으로 이끈다. 바로 과학과 기술로의 여행이다.

‘해저 2만리’에서 작가가 예상한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현대의 잠수함과 똑같은 모습이다. ‘정복자 로뷔르’(1885년)에서 작가는 헬리콥터처럼 움직이는, 탈것을 발명했다. ‘지구에서 달까지’(1865년)에선 우주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놀랄 만큼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의 소설이 흥밋거리에 그친 것은 아니다. 그는 소설을 통해 19세기의 큰 질문들에 대답하려 했다. 전쟁, 식민 통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요구, 자본주의의 확산과 인류의 미래 같은 질문들 말이다.

이런 생각이 잘 담긴 작품이 1994년 출간된 ‘20세기 파리’다. 원고는 1863년 탈고됐지만 출판을 거절당하는 바람에 이 작품은 100년 넘게 금고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과학에 지배당한 세계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젊은 시인의 얘기다. 세상은 인간의 감정과 시(詩)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과학과 돈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비관주의로 가득 찬 이 작품은 기술 발전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는 다른 작품과 대비된다.

그는 돈과 기업의 위력이 인간에 미치는 악영향을 짚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상행위와 기업에 지배당한다. 자유도 짓밟힌다. 그 결과 익명성과 고립이라는 현상이 파생된다. 사람들은 물욕에 타락하고 문학과 예술은 쇠락한다. 무엇보다도 인류애가 실종된다.

현대사회를 돌아보면 그의 통찰이 실로 통렬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이 ‘경이로운 여행’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기술 과학의 진보에 대한 찬사를 하기 전에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미래 사회의 단면을 먼저 냉정하게 짚은 셈이다. 그런데 출판을 거절당해 빛을 보지 못했고, 그 바람에 가장 마지막에 출판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결과다.

쥘 베른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모험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저자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은 여전히 열정적이다.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바캉스를 떠날 때 쥘 베른의 책을 한 권쯤 가져가라고 권하고 싶다. 탐험 욕구와 지적 욕구가 모두 채워질 것이다. 필자는 ‘황제의 밀사’ 미하일 스트로고프와 함께 시베리아로 떠날 계획이다.

제라르 뱅데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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