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아빠와 함께 셰익스피어를…이윤기-다희씨 부녀

  • 입력 2005년 4월 13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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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 37편을 함께 번역하기로 하고 첫 책 ‘겨울 이야기’를 펴낸 이윤기 씨(오른쪽)와 딸 다희씨. 다희 씨는 “셰익스피어는 글맛이 대단했다. 애절하고, 즐거운 얼굴들이 금방 떠오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권주훈 기자
셰익스피어의 작품 37편을 함께 번역하기로 하고 첫 책 ‘겨울 이야기’를 펴낸 이윤기 씨(오른쪽)와 딸 다희씨. 다희 씨는 “셰익스피어는 글맛이 대단했다. 애절하고, 즐거운 얼굴들이 금방 떠오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권주훈 기자
23일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41년 되는 날이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58) 씨와 딸 다희(25) 씨가 최근 3년간의 공동작업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싱싱한 우리말로 옮겼다. 2003년 결혼해 서울 경복궁 근처에 사는 다희 씨가 먼저 우리말로 옮긴 텍스트를 경기 과천의 친정집으로 e메일로 전송하면 이 씨가 자기 견해를 꼼꼼히 붙여 딸에게 다시 보낸다. 다희 씨는 이를 채택할지 말지 심사숙고하면서 원고를 완성시켜왔는데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한 이 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번역가로 꼽히고 있고, ‘아이네이아스’ 등 2권을 번역한 다희 씨도 아버지를 따라 훌륭한 번역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과천 자택에서 만난 이 씨는 “일흔 살이 될 때까지 작업을 할 건데 앞으로 딸과 셰익스피어 작품 37편을 모두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엔 네 원고를 크게 확대 복사해서 가져와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친정을 찾은 딸에게 말했다.

다희 씨는 ‘리어왕’ 등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먼저 번역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다. 이 씨는 “‘겨울 이야기’는 겨울의 시련을 겪고 나면 사랑의 봄이 찾아온다고 말하는 상큼한 작품”이라면서 “봄 여름의 풀밭 같은 작품으로 먼저 가자고 권했다”고 말했다.

다희 씨는 공부하러 떠난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를 미국에서 다닌 뒤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졸업했다. 이화여대에 입학했다가 도중에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로 건너가 졸업했다. 다희 씨는 고등학교 때 귀국해 반 년 만에 백일장 장원을 차지해 “우리 말 감각을 잃어버렸으면 어떡하나”하는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이 씨는 “이번에 작업하면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을 다희가 골라줬다”며 미더운 눈길을 보냈다.

다희 씨는 지금 라틴어와 그리스어, 프랑스어까지 공부하고 있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킬로스 같은 그리스 비극을 공부하고 싶어요.” (다희 씨)

“그리스 희극도 재밌다. 아리스토파네스 읽어봐라. 얼마나 재밌는데.” (이 씨)

다희 씨는 “아버지와 만나기만 하면 번역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 그리스 신화 이야기로 빠져 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셰익스피어 역시 그리스 신화 속에서 큰 사람”이라며 “그리스로 여행을 갔고, 그리스 라틴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책의 서두와 말미에 ‘겨울 이야기’ 속에 배어든 ‘헤르미오네’와 ‘피그말리온’ ‘오이디푸스’ 이야기 등 그리스 신화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놓았다.

다희 씨는 또 다른 그리스 신화 이야기인 ‘황금 나귀’를 오래 번역해 왔으며 머지않아 책으로 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딸은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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