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三國志’만으론 부족하다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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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이런 질문에 “삼국지!”라 대답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왜? 그 이유를 캐물으면 대체로 “재미있는 데다 삶의 지혜를 얻기 때문”이라 말한다.

삶의 지혜라…. 삼국지 밑바탕에 깔린 윤리는 인의(仁義)라는 주장이 있긴 하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난세(亂世)에서 살아남고 이전투구(泥田鬪狗)판에서 이기기 위한 마키아벨리즘이 더 짙게 깔려 있다. 권모술수가 삶의 지혜라면 세상이 너무 살벌하지 않은가.

소설가 장정일의 삼국지가 최근 새로 나왔다. 이문열, 황석영의 삼국지와 더불어 삼국지 시장에서 3파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1988년 나온 뒤 지금까지 무려 1500만부가 팔렸단다.

▼相生대신 相爭의 처세술만▼

언젠가 어느 대학 수석합격자가 “삼국지를 읽은 게 논술시험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삼국지 광고엔 으레 ‘논술 실전에 이로운 책’이라는 문구가 따라다닌다. 삼국지가 논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인데….

삼국지가 잘 팔리니 배가 아파 딴죽을 걸려는 게 아니다. 삼국지는 독서인구를 늘리는 데 기여했고 나름대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긴 하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독자들이 삼국지 처세술을 행동 지표로 삼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삼국지는 ‘고전(古典)’이란 탈을 쓰고 있기에 전문 식견이 모자란 독자들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고대소설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황당무계한 전투장면을 역사적 사실로 오인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많으랴.

전쟁에서는 승패가 갈릴 뿐 상생(相生)이란 없다. 가뜩이나 갈등이 심화되는 요즘에 재능 있는 작가들이 상쟁(相爭)의 승자를 영웅시하는 삼국지 되쓰기에 매달리니 안타깝다.

문학성이 돋보이는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는 일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자리잡고 마는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건만 수상작가의 한국어 번역본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국 출판계에서 프랑스의 공쿠르상 수상작을 다투어 빨리 번역해 출판하던 열정이 식은 지 오래다. ‘다빈치 코드’란 대중 추리소설이 지적(知的) 소설 행세를 하며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문학성은 떨어지는 책이다. 독서시장이 점점 천박, 척박해지고 있지 않은가.

최근 방한한 미국 출판계의 대부 앙드레 쉬프랭은 “미국에서는 인기 작가의 책만 찍어낸 탓에 미국문학은 노벨상에서 멀어졌다”고 개탄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존경 받지 못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중문학의 존재 의의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순수문학만을 옹호하는 것은 속 좁은 자세다. 문제는 예술성 높은 작품이 쇠퇴하는 게 지성의 위기를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한국에서 그런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성적 사유(思惟)보다는 감성적 말싸움이 ‘토론’이라는 화려한 가면을 쓰고 TV, 라디오, 각종 세미나장에서 활개 친다. 독서나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득세하고 있다. 정부 정책도 즉흥적인 것들이 양산된다. 이런 반(反)이성적, 반지성적 행태를 비판하면 이를 반개혁적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선거와 통치는 다르다. 선거는 ‘바람 몰이’나 이벤트로도 이길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통치를 하려면 합리성과 통찰력을 뿌리로 삼아야 한다.

▼지성의 위기 처한 우리사회▼

오늘날 한국 사회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천년 전 중국을 무대로 한 삼국지를 읽기보다는 몇 십년 전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의 체험을 고백한 ‘홍위병’이란 책을 권하고 싶다. 그 책엔 권력자의 행동대인 홍위병에 의해 국민의 자유가 유린당하는 생생한 사례들이 수없이 나온다. 혁명이란 미명 아래 펼쳐진 ‘역사의 후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설마 이 책을 금서목록에 포함시켜 판매금지하지야 않겠지….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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