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박사 “知識은 21세기의 최대 자본이자 에너지”

  • 입력 2004년 1월 7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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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의 도래를 내다본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 박사는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식사회에서 끊임없는 자기 연마와 지식근로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클레어몬트=이권효기자
지식사회의 도래를 내다본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 박사는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식사회에서 끊임없는 자기 연마와 지식근로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클레어몬트=이권효기자
《21세기는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로 규정된다. 지식사회는 어떤 사회이며 지식사회를 구성하는 조직과 개인은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피터 드러커 박사(94)를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에서 만났다. 이 인터뷰는 지난 10년간 드러커 박사의 주요 저술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해 온 이재규(李在奎) 대구대 총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21세기는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로 규정된다. 지식사회는 어떤 사회이며 지식사회를 구성하는 조직과 개인은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피터 드러커 박사(94)를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에서 만났다. 이 인터뷰는 지난 10년간 드러커 박사의 주요 저술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해 온 이재규(李在奎) 대구대 총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한국에서도 지식사회 논의가 활발하다. 박사가 40년 전 예상한 ‘지식사회’가 이제 세계적인 조류가 된 것 같다.

피터 드러커 박사의 친필 서명.

“6·25전쟁이 끝난 직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한국은 농업사회였고 교육은 엉망이었다. 10년 전 다시 방문했을 때 한국은 철저한 산업사회로 변했고 빠르게 지식사회로 가고 있었다. 영국이 250년, 미국 독일 프랑스가 80∼100년 만에 이뤄낸 것을 한국은 단 40년 만에 해냈다. 역사상 드문 경우다.”

―재작년 출간한 ‘다음 사회(Next Society)’에서 한국을 ‘기업가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는 나라’로 꼽았는데….

“40년 전만해도 한국에 ‘기업’이란 게 없었다. 오늘날은 어떤가.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20여개 산업분야는 세계 선두다. 한국은 새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구조가 변할 것이다. 재벌도 전문경영인들이 자율경영하는 회사들로 바뀔 것이다.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기능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다. 거대 중국이 시장이자 경쟁자로 급부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문제인데 노동력의 중심이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로 급속히 이동할 것이다.”

―지식근로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다가올, 아니 다가온 사회의 지배적 노동력이다. 지식근로자는 새로운 자본가 집단이다. 지식사회에서 지식(知識)은 새로운 형태의 자본이다.”

―많은 사람이 지식사회를 이야기하지만 ‘지식’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식사회에서의 지식은 전기나 돈처럼 오직 기능적으로(functional) 활용될 때만 존재하는 에너지 같은 것이다. 지식은 ‘일에 적용이 가능한가’가 중요하다. 지식은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의 상상력과 기능이기도 하다. 경험에 의존한 작업이 원리나 시스템으로 작동될 때 지식이 적용된 것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3시간 걸리던 일이 지식에 기초해 관리되면 30분 만에 해낼 수 있는 방식이다.”

―개인과 조직은 지식사회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키워야 하나.

“지식정보혁명은 피할 수 없다. 지식은 돈보다 더 쉽게 돌아다닌다. 지식사회의 개인은 사회적 성공 가능성도 높고 동시에 실패 가능성도 높다. 지식사회는 고도의 경쟁사회다. 상승 이동이 무제한 열려 있는 최초의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지식이 기존의 생산수단과 성격이 다른 데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는 지식작업은 자연스럽게 남녀평등(유니섹스)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이는 여성들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지식작업의 성격이 남녀 차이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라. 첫째, ‘당신의 강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둘째,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언제까지 해낼 수 있는가’, 셋째, ‘당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며 당신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는 무엇인가’. 나는 이 같은 방법으로 많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였다.

―지식사회는 불안한 사회로 인식되기도 한다.

“개인은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이동’(직업이동과 신분변화 등)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하게 직업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식사회의 개인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지식사회를 이끌고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지식사회는 조직이나 개인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치열한 경쟁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상처에 대비해야 한다. 이 같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면 자신을 위한 봉사활동과 같은 비경쟁적 인생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9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비영리 경영재단을 설립하고 환경보호단체 등에 해마다 혁신상을 주고 있다. 도시에 새 공동체를 만들어 줄 비영리조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지식사회가 ‘인간적’ 사회로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매우 강조했다.

―지식에 기초를 둔 기술자와 산업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나.

“한국에도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정보혁명(지식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은 비슷하다. 영국은 1850년대에 산업발전에서 우월했던 지위를 미국 독일 등에 빼앗겼다. 당시 영국은 여전히 기술에서 앞섰지만 기술자를 경멸했다. 노동력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지식작업과 지식근로자를 대접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식근로자들을 단순한 피고용자에 머물도록 한다면 과거 영국이 기술자를 장사꾼으로 멸시하다 퇴보했던 경우와 비슷해질 것이다.”

―지식근로자도 조직을 떠나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조직의 최고경영자(CEO)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능한 CEO는 절대로 ‘나(I)’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We)’라고 한다. 생각도 ‘우리’라는 식으로 한다. 그들은 먼저 듣고 나중에 이야기한다. 유능한 CEO들은 결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내가 하는 대로 하시오’라고 말한다.”

―올해도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국제사회와 한국사회를 어떻게 내다보나.

“정보와 지식의 유통을 막을 방법은 없다. 전자상거래가 가져온 변화는 정말 엄청나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국가든 경쟁은 지구적(global)이다.

한국사회는 더 경쟁적일 필요가 있다. 물건을 사려는 의지가 있어야 해외에 팔 수 있다. 수출을 하려면 문을 열어야 한다. 미국 생산업자들은 구태여 한국에서 사지 않아도 되고 한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그다지 염려하지 않는다. 일본 중국 싱가포르 멕시코 등지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경제를 지배한다는 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중국과 인도가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생산력에서, 인도는 지식력(knowledge power)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기업가들은 국제사회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대응해야 한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젊은 인구의 감소, 지식근로자의 급증, 제조업의 점진적 퇴보, 신흥 경제대국의 등장 같은 변화를 말한다.”

그는 조직과 개인은 변화를 앞당겨 추진하는 능력이 있지만 정부와 기업들은 여전히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무작정 열심히 하려는 ‘조직적 둔함(organization inertia)’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클레어몬트=이권효기자클레어몬트서 boriam@donga.com

▼피터 드러커 박사는 요즘…▼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이 시간에 책상 앞에서 뭘 고민하고 있었을 테지요.”

드러커 박사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현상’을 주제로 막 책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12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발행하는 경영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선정한 ‘경영 대가들이 뽑은 대가 중의 대가(gurus’ gurus)’ 1위를 차지한 그는 늙었지만 끊임없이 일하고 있었다. 한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수많은 저술을 내놨으며 지금도 언제나 새로운 것을 구상한다.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소설가 토마스 만 등 당대의 석학들을 어릴 때부터 만났다. 드러커 박사는 15세 때 부모를 따라 출입한 빈의 한 살롱에서 ‘파나마운하의 개통이 세계무역에 미치는 영향’이란 첫 연구물을 발표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사로 일하던 그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1937년 대공황 시절 영국 신문의 특파원 자격으로 미국 동부로 이주한 뒤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 등과 교류하면서 ‘타임’ ‘포천’ 등의 잡지에 활발히 기고했다. 여러 대학에서 정치학 통계학 철학 경영학 등을 강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의 몰락을 예견한 ‘경제인의 종말’(1939)을, 이어 ‘산업인의 미래’(1942)를 펴내 미국 정치학계와 경제학계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이 무렵 GM, GE 등 굴지의 기업체에 경영컨설팅을 했으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자문역할도 했다.

1950년 뉴욕대 정교수로 취임해 20년간 근무했으며, 1971년부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 드러커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경영의 실제’(1954) ‘단절의 시대’(1969) ‘혁신과 기업가 정신’(1985)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 ‘21세기 지식경영’(1999) ‘다음 사회’(2002) 등 지금까지 펴낸 40여권의 책은 전 세계 경영학자와 일반인이 애독하는 저서가 됐다.

드러커 박사는 “진정한 지식근로자에게 은퇴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쓴 책 가운데 어느 책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이다.

클레어몬트서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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