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602>曝 쇄(포쇄)

  • 입력 2003년 8월 3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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曝-현쬘 포 쇄-햇빛쬘 쇄 濕-축축할 습

豪-호걸 호 浸-잠길 침 籍-문서 적

장마가 끝났다. 봄부터 유난히 비가 많았던 탓인지 올해 장마는 의외로 비가 적었다. 비피해도 例年(예년)처럼 그리 많지 않아 무사히 잘 끝났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不況(불황)이라 어려움이 많았는데 하늘도 딱한 사정을 굽어보셨던 모양이다.

비록 가볍게 지나가기는 했어도 장마는 역시 不請客(불청객)이다. 시도 때도 없이 비를 쏟아 붓는가 하면 변덕이 죽 끓듯 하여 언제 한바탕 난리를 칠지 몰라 맘을 놓을 수가 없다. 우선 지루하고 짜증나며 多濕(다습)하여 불쾌지수도 높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가뭄보다는 장마의 피해가 크다는 속담이다. 集中豪雨(집중호우)에 따른 田畓(전답)의 流失(유실)이나 가재도구의 浸水(침수) 등은 가뭄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장마철 洪水(홍수)로 재산상의 피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설사 洪水의 피해가 없다 해도 습기 때문에 입는 피해가 적지 않다. 도처에 곰팡이가 피는가 하면 음식물이 쉬이 변질되어 식중독 사고도 많다. 그 뿐인가? 때로 水因性(수인성) 전염병이 猖獗(창궐)하여 괴롭히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장마기간의 防濕(방습)에 지혜를 모아왔다. 창호지로 韓紙(한지)를 사용함으로써 습도를 자동 조절토록 했는가 하면 장롱은 오동나무처럼 吸濕性(흡습성)이 강한 목재를 사용함으로써 역시 습도를 조절토록 했다. 물론 틈틈이 군불을 지펴 한껏 눅은 온돌을 말리기도 했다. 제습기가 따로 없었던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다.

장마가 끝난 뒤의 처리는 더욱 중요했다.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擧風(거풍·바람에 쏘임)하고 의복도 曝쇄하소.’ 農家月令歌(농가월령가)에 보이는 구절이다. 그래서 햇빛이 나면 다들 문을 활짝 열어 젖혀놓고 옷이며 가재도구를 꺼내 말리는 것이 일과였는데 이를 曝쇄라고 했다. 바람에 쐬고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曝쇄하는 것에 가재도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책도 있다. 주로 善本(선본)의 고서나 史庫(사고)의 典籍(전적)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를 曝書(폭서)라고 했다. 조정에서는 曝書를 위해 특별히 曝쇄官을 별도로 두어 정기적으로 실행했다. 대체로 장마가 끝나면 吉日(길일)을 택해 實錄(실록) 등을 曝쇄하였는데 春秋館(춘추관)에서 담당했다. 曝쇄가 끝나면 그 기록을 상세히 남겼는데 實錄曝쇄形止案(실록포쇄형지안)이 그것이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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