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漢字]<603>自 殺(자살)

  • 입력 2003년 8월 5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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殺-죽일 살 苦-괴로울 고 淵-못 연

恥-부끄러울 치 朽-썩을 후 餘-남을 여

믿어지지 않겠지만 한자 ‘自’는 사람의 ‘코’를 보고 만든 전형적인 상형문이다. 후에 느닷없이 ‘자기’라는 뜻으로 轉用(전용)되자 自 밑에 ‘숨을 쉬다’는 뜻의 ‘비’(비)를 덧붙여 현재의 鼻(코 비)자를 만들었다. 한자의 假借(가차)현상이다.

殺에 보이는 수(수)는 城壁(성벽)이나 宮門(궁문)을 기어 올라오는 적군을 밀어내는 데 쓰였던 날 없는 창을, 木은 나무, x는 상처, 주(점)은 뚝뚝 떨어지는 피를 각기 뜻한다. 그러니까 殺자는 戰場(전장)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어있는 병사의 처참한 모습인 셈이다.

自殺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人事가 複雜多端(복잡다단)해짐에 따라 스트레스나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苦痛(고통)에서 도저히 헤어날 方途(방도)가 없다고 판단되면 自殺을 생각하게 된다. 自殺을 苦痛의 도피처로 여기는 것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해 自殺을 택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 뒤 한동안 잠잠했던 自殺 사건이 요즘 다시 번져나가는 차에 이번에는 재벌기업인의 충격적 自殺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의 生命(생명)을 쉽게 단념하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 苦痛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과연 自殺을 통해 苦痛의 深淵(심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 없지 않거니와 남은 자들의 苦痛은 또 어찌하란 말인가. 여기 自殺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 靑史(청사)에 이름을 남긴 예를 소개함으로서 龜鑑(귀감)을 제시코자 한다.

司馬遷(사마천)은 중국 최고의 史家(사가)다. 흉노를 토벌하다 항복한 친구 李陵(이릉)을 변호하다 激怒(격노)한 漢武帝(한무제)로부터 宮刑(궁형·성기가 잘리는 형벌)을 당했다. 극도의 恥辱(치욕)을 느낀 나머지 自殺을 결심했지만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는 죽음을 몇 가지로 분류했다. 泰山(태산) 같이 위엄을 갖춘 죽음이 있는 반면, 깃털보다도 가벼운 죽음이 있는데 그것은 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렇게 自殺로 생을 끝맺는다면 지극히 하찮은 죽음이 될 것인즉(‘九牛一毛’의 고사), 누가 동정할 것이며 명예는 그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것보다는 아버지의 遺言(유언·곧 최초로 通史를 쓰는 것)을 잇는 것이 더 값있는 죽음이 될 것으로 여겼다. 결국 그는 自殺 대신 역사의 기술에 餘生(여생)을 바쳐 마침내 不朽(불후)의 명작 ‘史記’를 완성하게 된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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