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스님의 산사이야기]<24>땅에서 넘어진 자 땅 짚고…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08분


인생은 행과 불행이 교차하는 가운데 더욱 풍부해지고 생기를 띠게 된다. 사진제공 현진 스님
인생은 행과 불행이 교차하는 가운데 더욱 풍부해지고 생기를 띠게 된다. 사진제공 현진 스님
마음이 심드렁해지면 나는 버릇처럼 바다를 보고 온다. 똑 같은 장소라도 바다는 갈 때마다 그 모습이 변화무쌍하지만 넘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그 미덕은 한결같다. 한번은 등대에 앉아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를 보면서, 바다는 파도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이, 바다는 파도가 없으면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파도가 일지 않으면 산소도 품지 못한다. 바다의 거대한 수용의 미덕도 알고 보면 파도가 근간이다. 그러므로 파도는 바다를 정화시키는 힘이기도 하며 호흡작용이기도 하다.

한 차례씩 높은 파도가 지나간 다음날의 바닷가는 얼마나 평온한가. 그리고 바닷물은 또 얼마나 맑고 눈부신가. 이처럼 바다는 파도를 통해 서로 뒤섞이면서 자신을 맑게 하는 셈이다.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거센 풍랑과 폭풍우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담금질이나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바다에서 역경 공부의 미학을 배운다. 파도를 무서워하는 바다는 그 존재 의미가 없다. 그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결코 잠식당하지 않는 것이 바다의 본성이다. 그래서 바다는 스스로 더럽히거나 썩지 않는다. 파도가 번뇌라면, 바다는 그 번뇌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도망 다니지 않고 당당하게 극복하는 자세인 것이다.

한 번씩 자신의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이 계속될 때 바닷가에 서 보라. 현재 자신이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가르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는 보조스님의 법어처럼 인생사의 고통과 번뇌는 실존을 드러내 보이는 장치에 불과하다. 두 가닥 새끼줄은 같은 굵기로 꼬여야 튼튼하듯, 우리 인생도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다가올 때 삶의 내구력이 더 강해진다.

그러므로 현재의 역경과 고난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지금의 위기는 전부를 놓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h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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