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품안 '어른애' 는다…대학졸업해도 무직 일쑤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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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뒤 99년 귀국한 김모씨(29·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현재 무직상태지만 돈 벌 생각이 없다. 집 사주고 생활비까지 대주는 부모 덕택에 생계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

백일을 맞은 아들까지 있는 그는 매일 동네 PC방에서 아버지가 준 돈으로 증권거래를 하며 ‘일확천금’을 노리기도 하고 컴퓨터 게임으로 하루를 보낸다.

올해 의대 졸업반인 이모씨(24·여)는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맹(盲)’이다. 고교졸업 후 대학에 들어가서도 부모가 번갈아 승용차로 등하교를 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씨는 “일주일에 한두번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엄마나 아빠가 학교까지 차를 갖고 데리러 온다”며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별로 불만을 갖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년이 훨씬 지난 20, 30대 젊은이들 중 이처럼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한창 일해야 할 인적자원이 부모들의 과잉보호로 놀고 먹으며 사회적 위화감까지 조성하고 있다는 것.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8년째 공부하고 있는 박모씨(29)는 “매일 차로 학원에 등하교시키는 부모들이나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부 고시생들을 보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며 “요즘에는 고시생들 연령도 낮아져서 부모 손에 이끌려 이 학원, 저 학원 찾아다니며 고시를 준비하러 온 학생들도 많고 고시 시험장은 ‘엄마부대’가 대거 몰려 고3 수능시험장을 방불케 할 정도”라고 전했다.

서울대 이순형(李順炯·49·소비자아동학) 교수는 “한국의 40, 50대들은 스스로 부(富)를 축적한 세대이면서도 자식 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특히 재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식을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며 “그러나 이는 자식의 자립의지를 마비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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